서상욱 역사칼럼니스트

 
상대를 다급하게 몰아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한종’이란 상대에게 일정한 조건을 허용하여 마음대로 행동하도록 개방하는 것을 가리킨다. 물론 도망치지 못하도록 노선과 범위 등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근두운을 타고 자유롭게 하늘을 횡행하는 손오공도 결국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까불었을 뿐이다. AD 199년, 여강(廬江)태수 유훈(劉勛)은 양주(揚州)의 비적 정보(鄭寶)의 세력을 흡수하여 막강한 세력을 구축했다. 잠재적 위협으로 여긴 회계(會稽)태수 손책(孫策)은 사전에 유훈을 제거할 계략을 꾸몄다. 우선 그는 일부러 자신을 낮추며 이렇게 말했다.

“상료(上繚)의 종당(宗黨)과 백성들이 저를 기만했습니다. 공격하려니 길이 멀어 불편합니다. 그대가 토벌하러 가신다면 제가 외원(外援)을 하겠습니다.”

손책은 보물과 갈포를 뇌물로 유훈에게 보냈다. 모두 축하했지만 황족 출신 유엽(劉曄)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반대했다.

“상료는 작지만 수비시설이 견고하여 공격하기는 어렵습니다. 함락까지는 10일 이상 걸립니다. 또 상료를 공격할 때 우리의 후방은 비게 됩니다. 손책이 빈틈을 노려 우리를 기습하면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만약 상료를 함락하지 못하면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유훈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상료를 출정했다. 유훈의 대군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종당의 수령은 성을 비우고 재빨리 도망쳤다. 유훈이 빼앗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손책은 황조(黃祖)를 친다는 명분으로 서진했다가 그 소식을 듣고 족형 손분(孫賁)과 손보(孫輔)에게 8천의 병력을 주어 팽택(彭澤)에 주둔시켰다. 자신은 주유(周瑜)와 함께 2만의 병력을 이끌고 유훈의 근거지인 환성(晥城)을 기습했다. 성을 함락한 그는 이술(李術)을 여강태수로 추천하고, 3천의 군사를 주어 환성을 지키도록 했다. 나머지 포로는 모두 자신의 관할지역인 오군(吳郡)으로 끌고 갔다. 다급해진 유훈이 군사를 돌려 팽택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손분과 손보가 그를 요격하여 대패시켰다. 유훈이 황조에게 구원을 요청하자, 황조는 아들 황야(黃射)에게 수군 5천을 주어 유훈을 돕도록 했다. 손책이 다시 유훈을 공격하자 대패한 그는 갈 곳이 없어서 북방의 조조에게 투항했다.

손책은 ‘한종’으로 정적 유훈을 제거했다. 손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손책의 탁월한 궤계 구사능력이다. 그는 본심을 위장하기 위해 일부러 약하게 굴었다. 도회지술(韜晦之術)의 정수였다. 그는 철저히 유훈에게 아부했다. 신뢰를 얻자 상료를 기습하라고 건의했다.

둘째, 유훈의 인품을 잘 이용했다. 비적을 받아들여 세력을 키운 유훈은 기고만장해졌다. 그에게는 강화된 세력을 유지할 자금이 필요했다. 손책이 상료의 부를 이용하라고 권하자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했다. 유엽이 경거망동을 하지 말라고 건의했지만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잃고 싶지 않았다. 작은 성공으로 자신의 역량을 과대평가한 그는 유엽의 혜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고집을 부렸다.

셋째, 처음부터 유훈은 전략적 능력에서 손책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유훈의 현재 전력을 과소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결전보다는 우회전술을 채택했다. 그는 유훈이 본거지를 비운 틈을 노려 환성을 공격하고, 유훈의 회군노선에 매복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유훈은 본거지가 함락되었다는 보고를 듣고 급히 회군했지만, 장기간의 원정으로 그의 군대는 사기가 떨어졌다. 회군 도중에 종당의 잔당과 야적들로부터 끊임없이 기습을 받았다. 게다가 손책의 복병이 배후를 공격하자 그는 완전히 주도권을 상실하고 말았다.

넷째, 손책은 정보관리를 중시했다. 그는 유훈의 작전 경로와 목표 및 참모들의 건의유무를 참작하여 자신의 대응전략을 수립했다. 상황이 자신의 예상대로 전개되자, 그는 차츰 주도권을 장악하여 강력한 정적을 손쉽게 제거하고 자신의 세력을 강화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 귀찮은 종당의 세력마저 제거하는 어부지리를 얻었으니, 혼란의 시대에 심모원려로 삼국의 기틀을 다진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한 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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