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광복이 되고도 한동안 태극기는 남과 북의 공통된 국기였다. ‘태극기(太極旗)’는 1883년(고종 20)에 조선의 국기로 채택되고 1948년부터 대한민국 국기로 사용되고 있다. 남과 북에 분단된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 북한 지역에서도 당연히 태극기가 사용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48년 9월 9일 평양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태극기는 모습을 감출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인공기’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인공기’, 북한에서는 ‘공화국 국기’라고 부른다. 위로부터 파랑·빨강·파랑이 배치되었고 그 사이로 2개의 가느다란 흰색 선이 있으며, 각 색의 비율은 6:2:17:2:6이다. 빨강 띠에는 중앙에서 깃대 쪽으로 조금 치우친 곳에 하양 원 바탕 안에 빨강 5각별이 있다. 빨강은 공산주의 투쟁을 위한 혁명정신을, 붉은 별은 공산주의사회 건설을, 별의 흰색 바탕은 음양사상을, 파랑은 평화에 대한 국민의 희망을, 전통색인 하양은 광명을 상징한다.

1947년 11월 김일성의 지시로 북조선인민위원회 3차 회의에서 현재의 기를 만들었으며 1948년 9월 8일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인공기를 북한의 공식 국기로 제정하였다. 6.25전쟁 당시 우리 국군이 평양을 함락하고 이승만 대통령이 평양역 광장에 나타났을 때 평양은 일순간 태극기의 물결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그동안 북한에서 태극기는 한국에 대한 악감정, 즉 ‘학습된 증오’의 최대 상징이었다.

북한이 이번에 평양에서 열리는 ‘2013 아시안컵 및 아시아클럽 역도선수권대회’에서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극기를 게양하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도록 허용하였다. 분단 이후 초유의 일로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북한은 지난 2008년 평양에서 열기로 했던 월드컵 축구 아시아 최종 예선 제1차전 남북대결에서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를 허용할 수 없다며 경기를 상해로 옮기는 강경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우리의 관심과 궁금증은 왜 북한이 그토록 거부하던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를 이번에 선뜻 허용했느냐 하는 것이다. 거시적 분석과 미시적 분석이 모두 필요한 바, 먼저 거시적 분석부터 시작하면 이제 김정은 체제는 더 이상 분단을 부정할 수 없으며 나아가 ‘분단체제’를 선호한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차라리 분단체제를 갈구한다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수 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남과 북의 국력이 역전한 1970년대 초반부터 북한은 ‘조선은 하나다’는 구호를 제창하였지만 내심은 ‘조선은 두 개다’였다. 전대미문의 세습체제로 가는 봉건제를 유지해야 하는 평양 정권에게 통일은 그저 ‘액세서리’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제발 38선 북쪽엔 관심조차 꺼달라는 것이 북의 진정한 속셈이었다.

미시적으로 북한은 지금 대중의존도를 과감하게 축소하면서 대남의존도를 높여 체제재생산을 꾀하는 전략으로 바꾸고 있으며, 따라서 평양에 태극기가 휘날리든 애국가가 울려 퍼지든 남쪽에서 뭔가 퍼가기만 하면 된다는 계산에 매몰되어 있다. 작금의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북한의 낮은 자세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중국은 이념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더 이상 북한에 우방이 되기 어렵다. 특히 근래 들어 중국의 살인적인 인플레는 북한이 중국 시장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최대 원인으로 되고 있다. 중국에 오래 의존하면 할수록 북한은 파멸의 벼랑 끝으로 갈 수밖에 없다.

한류열풍의 북한 상륙에 이어 이번에 태극기와 애국가가 평양으로 ‘진주’하는 모습은 감개무량하다. 이제 남과 북은 이데올로기 종식의 새로운 장정을 시작하는 모험을 단행하고 있다. 특히 김정은의 결단을 우리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앞으로 태극기의 허용에 이어 우리 한국의 선진화된 경제와 문화에 대해서도 공개적인 개방을 요청하는 바이다. 정전체제가 무너져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대한민국의 국기와 애국가가 평양에 게양되고 울려 퍼져도 분단체제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고착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과 북은 이번의 두 체제 퓨전의 문화융성 이벤트로 새로운 통일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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