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멀미를 느끼는 분들은 없을까. 개성공단 재개 합의에 이은 이산가족상봉 합의, 곧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금강산관광 재개 전망 등 남북관계 발전은 그 속도가 하도 빨라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불과 4개월 전까지만 해도 신뢰프로세스와 협박프로세스가 충돌하여 불기둥이 솟구칠 것 같던 한반도는 지금 삼복더위에 이은 ‘대화 활화산’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모두 환영할 일이다. 북한의 대남의존 갈증과 한국의 신뢰원칙이 절묘하게 절충하여 발생하는 통일 열기의 뜨거운 에너지는 5년여 동안 멈추어 섰던 통일열차를 새롭게 출발시키고 있다. 우리 국민들의 관심은 과연 김정은 체제가 무엇 때문에 이처럼 남북관계 발전에 적극적이냐 하는 것이다.

우선 첫째로, 김정은은 집권 2년여 끝에 드디어 군부의 뜻에 따라봤자 얻을 것보다 잃을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군부야말로 세습권력의 북한에서 첫째가는 기득권세력이다. 변화는 그들에게 사약이다. 김정일이 달래 개혁과 개방의 언덕을 넘지 못한 것이 아니다. 세습권력과 총대가 결합하여 공존한 김정일 시대 개혁은 곧 ‘독약’이었다.
그런데 김정은은 군부 때리기의 8부 능선을 벌써 넘어섰다. 지난해 7월 이영호 총참모장에 이어 김정각 무력부장, 현영철 총참모장 등 군 수뇌부를 거침없이 밀어내고 자기 사람을 심었다. 이제 북한 군부는 김정은 체제의 첫 번째 개혁 대상이 되어 두부모처럼 잘려나가고 있다. 평양정권에서 군부 강경파는 주변부로 밀려나고 말았다.

둘째로, 출범초기부터 중국의 홀대를 받아온 김정은은 중국의존도에서 벗어나 대남의존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적 발상전환을 선택하였다. 지난 번 최용해 북한군 총정치국장의 베이징 방문에 이어 이번 7.27 60주년 행사를 위해 평양을 방문한 리위안차오 중국 부주석은 김정은의 면전에서 비핵화를 다시 강조하였다. 그 강도가 비핵화 강조 수준을 넘어 ‘레짐 첸지’까지 경고하였다니 김정은이 다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셋째로, 지금 김정은은 통치자금이 거의 고갈되었다. 중국의 실효적 제재는 압박의 강도를 완화하지 않을 전망이며 따라서 김정은은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로 그 돌파구를 찾고자 한 것이다. 최근 김정은과 장성택은 그동안 대남협박과 도발을 주도해온 정찰총국을 축소하고 김영철 정찰총국장을 대장에서 상장으로 한 계급 강등시켰다. 그리고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통일전선부에 젊은 피를 대거 수혈하여 신세대 인재들을 전진배치하였다.
하대하던 군인들 밑으로 들어가 기를 펴지 못하던 대남공작원들이 다시 제 진지로 돌아와 날개를 달고 대남사업의 대약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북한은 남북대화는 선호하지만 남북통일에는 관심이 없다. 기울어도 너무 기우는 ‘기아의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풍요의 한국으로부터 퍼갈 것은 과감하게 퍼가자는 것으로 북한의 대남전략이 바뀐 것뿐이다. 따라서 시동을 건 통일열차가 목적지를 향해 순탄하게 굴러갈지 불투명성은 언제나 함께한다고 할 수 있다.

통일열차의 기관사는 두 사람이지만 그 동력과 에너지는 전적으로 서울, 즉 우리 한국이 장악하고 있다. 그동안 ‘좋은 통일정책’은 ‘나쁜 정치’의 희생양이 되어 모두 사문화되어 버렸다. 식민지 시절 나라를 찾는 잃은 순전히 국력이 약해 불가능했지만 오늘 우리 대한민국의 국력은 통일이 아니라 그 이상도 해낼 수 있을 만큼 장성하였다. 왜 주저하는가. 정치인들은 밥그릇 싸움에 종지부를 찍고 통일의 대업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아마 지금 이 순간 통일의 기회를 놓친다면 그 절호의 기회는 다시 오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북한이 서두르는 저의는 바로 시간은 우리 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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