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정기국회가 열렸지만 여야 간 의사일정이 합의되지 않아 의정활동이 전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여야가 민주주의 수호와 국민생활의 편안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노라 다짐하고 있으니 민생의 장(場)이 활발히 펼쳐질 전망이다. 국회가 본격적으로 열리면 상임위원회나 본회의에서 현안을 두고 여야 간 불꽃 튀기는 공방전이 펼쳐질 것이고, 장관을 비롯한 정부 관리들은 국회에 출석하여 현안문제나 의원들의 질의에 대해 답변하면서 때로는 곤욕도 치를 것이다.

본회의나 상임위원회 회의 시에 날선 야당 의원 질의에 총리와 장관들이 궁지에 몰리기도 하지만 또 어느 경우는 답변을 제대로 하면서 오히려 의원이 질의 내용을 스스로 거두어들이면서 쩔쩔 매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매번 뉴스나 국회방송을 통해 의원질의이나 정부관계자들의 답변내용을 들으면 위원회 풍경이나 패턴은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필자가 내무부에 몸담고 있을 때에 국회가 열릴 때마다 상임위원회를 출입하면서 많은 일들을 지켜봤다.

이십 년이 넘는 세월동안 경험한 일 가운데 우문현답(愚問賢答)하던 장관의 답변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백광현 내무부 장관(현재 직제로는 안전행정부 장관)의 이야기다. 백 장관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임기 4개월을 남겨놓은 1992년 10월 9일, 그해 12월 18일 실시되는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공정하게 치르기 위해 중립내각을 구성했을 때 임명된 장관이다. 그해 11월쯤인가 정기국회 내무위원회에서 야당인 민주당 어느 중진 의원이 선거 중립을 줄기차게 요구하면서 장관 경력이 일천한 백 장관에게 질의를 했던 것이다.

야당 의원은 “시중에서 민주당을 빨강당이라 한다는데, 선거주무장관으로서 볼 때에 민주당이 빨강당이냐. 즉답을 하라”는 질의였다. 그 순간 위원회에 답변자료 준비 등을 위해 참석한 내무부 간부들과 직원들은 조용해졌다. 백 장관은 의원 질의가 끝나자마자 마이크를 잡고서 “민주당은 헌법에 의하여 존립이 보장되는 정당으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존중하며…”라고 말을 이어갔다. 그러자 질의했던 의원이 그 정도면 충분한 답변이라 여겼는지 “됐다”면서 도중에 답변을 끊으며 “장관님이 법조인 출신이라 답변을 잘 한다”고 치켜세웠다.

장관 답변과 의원의 그 말을 듣던 내무부 간부들이나 직원들은 그제야 안심했다. 임명된 지 1개월이 채 안된 초보 장관이라 의원 질의에 단순하게 대응하여 빨강당이네, 아니네, 이런 류의 단편적인 답변을 했더라면 위원회에서 웃음거리밖에 안됐을 것인데, 백 장관은 우문에 현답을 하여 첫 시험대의 위기를 빠져 나왔던 것이다.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적어도 장관쯤 되면 정국을 읽는 담대함이 필요하겠구나 느낀 당시의 국회 상임위원회에서의 한 장면이었다.

정당은 정당법 제2조(정의)에서 적시한 바와 같이,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책임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공직선거의 후보자를 추천 또는 지지함으로써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의 자발적 조직인 것이다.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복수정당제가 보장되며, 정당의 기본은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배하지 않는데 있다. 따라서 정당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반(反)하지 않는 한 국가로부터 보호받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 대한민국엔 14개 정당이 등록되어 있다. 그중에서 국고보조를 받는 정당은 새누리당, 민주당,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 등 원내 정당 4개뿐이며, 나머지 10개 정당은 원외 정당이다. 각 정당이 정강정책에 따라 활동 중이지만 통진당의 행보가 국민의 질타를 받고 있다. 국민이 익히 아는 사실로 통진당 소속 이석기 의원에 대한 내란 음모 혐의가 확인돼 국회에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내란음모 의원체포동의안’이 가결됐고, 현재 구속이 집행된 상태다.

이는 개인적 문제를 떠나 우리 의정사에 있어서도 불행인데, 그 불행을 좌초한 세력이 국가가 법에 의하여 국고보조금까지 지원하면서 보호해주는 원내 정당이요, 국회의원이라니 더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성난 일부 국민은 그 범법 당사자들은 법에 의해 심판을 받을 테지만 통진당을 헌법재판소에 제소하여 정당을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편으로 정부에서도 통진당에 대한 정당 해산 청원서를 받고 위헌정당인지 법리 검토가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국회의원이 종북 추종 세력이고, 내란 혐의가 있다 치더라도 정당 자체가 개입된 것이 아니고, 그 행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지 않는 경우라면 정부의 정당 해산 제소는 불법이므로 신중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정당의 핵심 당직자 등이 말한바 있듯 ‘경기도당 모임인 당의 공식 회합’이고, 이에 더하여 그 자리에서 내란 음모 행위가 있었음이 공식 확인된다면 통진당의 정당 활동은 명백히 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한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제소해야 함은 마땅한데, 이는 정부의 취사선택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의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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