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혜제의 황후는 선평후 장오의 딸인데 아이를 낳지 못했다. 여후는 황후가 임신한 것처럼 꾸미고 혜제의 후궁이 낳은 아들을 빼앗아 왔다. 그리고는 어미를 죽이고 그 아들을 태자로 삼았다. 드디어 혜제가 세상을 떠나자 제위를 이은 것이 이 태자다. 이윽고 그 태자가 세상을 가늠할 나이가 되자 자기를 낳은 어미는 죽임을 당했고 황후는 친어머니가 아님을 알게 되자 화가 났다.

“제아무리 태후라 하더라도 내 어머니를 죽이고 나를 황후의 친아들이라고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내가 아직은 어리지만 어른이 되면 가만두지 않겠다.” 마침내 그 말이 태후의 귀에 들어갔다. 태후는 그대로 두었다가는 장래에 큰 화근이 되겠다고 생각하여 그를 영항에 가두었다. 그리고는 황제의 병이 위독하다고 소문을 퍼뜨리고 가까운 신하들에게도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여후는 신하들 앞에서 말했다.

“천자는 백성의 평안을 도모하고 백성은 기꺼이 천자를 따라야 한다. 이 같은 마음이 통함으로써 비로소 천하는 태평이 유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오랜 병으로 착란 상태에 빠져 있어 황통을 계승하여 종묘의 제사를 주재할 능력을 잃었다. 이래서는 천하를 맡길 수가 없다. 곧장 바꾸는 것이 옳다.” 신하들이 일제히 머리를 조아렸다.

“천하의 만민을 위해 종묘사직의 평안을 도모하옵시는 태후의 심중을 헤아리고도 남습니다. 신하 모두는 충심으로 조명에 따르겠습니다.”

마침내 태후는 황제를 폐하고 몰래 죽여 버렸다.

그해 5월 병진 날에 상산왕 의(혜제 후궁의 아들)를 황제로 봉하여 홍이라 개명시켰다. 이때를 신제 원년으로 삼지 않은 것은 여후가 모든 정사를 다스렸기 때문에 정통성이 없었다.
소제 홍 7년(기원전 181) 정월 태후는 조나라 왕 우에게 조정으로 들어오라고 명령했다. 그 까닭은 조왕의 왕후는 여씨였는데 조왕이 후궁만 사랑하고 왕후 여씨에게는 냉담했다. 그 왕후가 질투에 못 이겨 장안으로 올라와서 여후에게 거짓말까지 덧붙여서 조왕을 헐뜯었다.
“여씨 일족을 황제로 삼다니 있을 수가 없다. 태후가 죽으면 반드시 놈들을 해치워 버릴 것이다.” 조왕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여후는 조왕을 즉시 불러들였다.

조왕이 도착하자 여후는 궁중의 한 방에 그를 가두어 놓고 누구도 만남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사람을 보내 감시하도록 하고 음식조차 금지시켰다. 남몰래 음식을 주는 자는 즉시 처벌되었다. 조왕은 원한에 사무쳐 이렇게 읊었다.

-여씨가 권세를 잡으니 유씨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
왕이라고는 이름뿐이고 나에게도 아내를 강요했다
그 아내가 질투 끝에 나를 팔아넘기니
계집의 밀고가 나라를 어지럽히는데
황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나의 충신들은 어디로 갔느냐
어찌하여 나를 버리고 갔느냐
차라리 황야에 자결해 버렸다면
하늘이 내 정의를 밝혀 줄 것을
아, 아, 자결해 버릴 것을 어찌 미처 깨닫지 못했던고
왕의 몸이 굶어 죽는데 인정을 베푸는 사람조차 없구나
하지만 여씨의 무도함에 대하여 하늘의 힘을 빌어 보복하리라.-

결국 조나라 왕은 죽었다. 유해는 서민 대우로 장안의 백성들의 묘지에 묻혔다.

기축날에 일식이 일어나 주위는 어둠에 휩싸였다. 여후는 예감이 불길하여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그리고는 측근에게 ‘이건 내 탓이로다’라고 말했다.

소제 홍 8년(기원전 180) 3월에 여후는 패수 기슭에서 액막이를 하고 돌아오던 길에 장안 동교동에 있는 지도정을 지나게 되었다. 그때 파란 개 같은 것이 나타나서 여후의 옆구리를 무는가 싶더니 순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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