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한국 산업 근대화의 주역’ ‘세기의 도전자’ ‘위기의 승부사’ 등 다양한 수식어가 방증하듯 현대경제사와 궤를 같이한 한국의 대표 기업가다. 아산이 일군 현대그룹은 자동차와 조선, 건설, 유통, 자재, 금융 등 주요 산업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들로 성장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 한국 사회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90년대 정몽헌 당시 현대전자 대표이사가 직접 스카우트해 현대전자에도 몸 담았던 박광수 칼럼니스트가 올해 75주년을 맞은 현대그룹을 파헤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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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 2022.10.27

 

<25>현대의 올림픽 종목 지원 역사

양궁으로 시작한 현대의 올림픽 후원

선수단 선발 및 협회 운영 관여 안해

女양궁 ‘단체전 9연패’ 압도적 성적

 

현대차 ‘피겨여왕’ 김연아 공식 후원

평창 때 ‘봅슬레이’ 썰매 제작에 나서

수소차 및 전기차 수백대 무료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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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대한양궁협회장(현대차 부회장)이 2016년 8월 8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삼보드로모 양궁 경기장에서 열린 ‘2016 브라질 리우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 시상식’에 참석해 기보배 선수에게 금메달을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스포츠 역사의 최대 지구촌 행사는 4년마다 개최되는 하계 및 동계올림픽이다.

올림픽은 하계올림픽부터 유럽 국가와 북미국가들 중심으로 논의가 시작됐으며, 최초의 제안자는 프랑스 명문 가문의 쿠베르탱이었다. 그의 제안에 따라 유럽 부호들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제1회 아테네 올림픽이 1896년 4월 6일부터 4월 15일까지 9개 종목 42개 세부 종목으로 분리돼 성공적으로 개최됐다. 주요 종목은 육상으로 달리기 6개 종목, 도약 4개 종목, 투척 2개 종목이었다. 

하계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되자 유럽과 북미국가들이 중심이 되어 고급스포츠로 알려진 동계종목의 올림픽을 분리해서 개최하자는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드디어 1912년 스톡홀름 하계올림픽을 앞두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동계올림픽을 별도로 분리해서 열자는 의견이 정식적으로 대두됐다.

그렇지만 북유럽국가(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들은 별도로 동계스포츠를 개최하고 있었기에 IOC가 주관하는 동계올림픽 개최를 바로 동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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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서울올림픽 유치위원장 자격으로 유치확정서에 공식 서명하는 정주영 회장. (출처: 아산정주영닷컴)

◆평창 동계올림픽, 정주영의 유치 전략 벤치마킹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921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924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를 프랑스 파리로 결정하면서 하계올림픽과 별도로 ‘국제 겨울스포츠 주간(1924년 1월 25일부터 2월 5일까지)’을 열고, 프랑스 샤모니를 첫 동계 스포츠대회로 인정했다. 이것이 동계올림픽대회의 초석이 됐다. 

지금까지 동계와 하계올림픽은 2년 간격을 두고 선정된 도시에서 수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총결집해 자신들이 4년간 훈련해서 익힌 기술을 최대한 발휘했다. 또 선수들은 국가의 명예를 지키고 1위를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2018년 한국이 삼수 만에 어렵사리 개최한 평창동계올림픽은 15개 종목 92개국 2925명의 선수가 참가했고, 한국은 15개 종목에 선수 146명이 참가했다. 한국은 금메달 5개(3000m 여자계주 금메달, 최민정 1500m 금메달, 남자 임효준 1500m 금메달, 매스스타트 이승훈 금메달, 스켈레톤 윤성빈 금메달), 은메달 8개, 동메달 4개로 올림픽 참가 이래 가장 많은 메달을 획득하면서 종합 7위 성적을 거뒀다. 

남북한의 여자 하키선수들이 단일팀으로 참가한 것도 큰 의미가 있던 대회였다. 당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올림픽 정신이 남북한을 하나로 뭉친 위대한 올림픽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치하했고, 비인기종목 여자컬링팀이 단체전에서 최초로 은메달을 획득했다.

스켈레톤 종목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윤성빈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했다.

1988 서울하계올림픽과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의 성과에 대한 객관적인 비교를 하면 사실상 88서울올림픽을 정부가 포기해서 당시 ‘올림픽 민간추진위원장’ 사령장 받은 정주영 회장은 ‘울며 격자 먹기’ 식으로 반강제적인 압박을 받았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은 올림픽 유치를 위한 민간추진위원장 자격으로 몸소 발(지구를 거의 세 바퀴 이상 출장 가서 IOC 위원들을 만남)로 뛰며 최소한의 자금투자로 88올림픽 유치를 성공시켰다.

삼성은 이러한 정주영 회장의 전략(현대그룹의 해외주재원 부인들을 총동원해서 투표권을 보유한 IOC 위원들 개인의 성격과 습관을 사전에 파악해 이에 적합한 개인 서비스 등을 지원함)을 벤치마킹했다. 삼성은 해외주재원들의 부인들을 동원해 총력을 다 했고 당시 정부의 책임자인 이명박 대통령까지 합세해 노력한 결과로 삼수 끝에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은 정부의 별다른 도움 없이 북한의 방해 공작을 극복하고 민간인 자격으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직접 내고 이를 과감하게 행동에 옮긴 실천력으로 최소한의 금액 투자로 88서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이로 볼 때 정주영 회장의 불굴의 정신과 ‘하면 된다’는 긍정적인 신념이 삼성의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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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양궁협회장을 맡고 있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이 28일 오후 서울 노원구 화랑로 태릉선수촌 양궁장에서 열린 시도 양궁협회 및 연맹 회장단 양궁체험에서 양궁 금메달리스트 기보배 선수 등 참석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이름을 적은 사과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출처: 뉴시스)

◆정몽구 회장 시절부터 양궁에 집중적인 후원

현대그룹의 올림픽 종목에 대한 후원의 역사는 양궁 종목부터 시작됐다.

삼국시대부터 말을 타면서 달리는 짐승에게 활을 쏴서 정확하게 몸통을 맞추며 사냥한 유전적인 요소가 이미 우리나라 선수들의 몸속에 흐르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양궁은 올림픽 메달 획득의 효자 종목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요건이 마련돼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양궁 종목의 금메달은 1984년 LA 올림픽에서 김진호 선수가 대한민국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알려졌다.

이후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회장 시절부터 양궁 종목에 대한 집중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게다가 금메달을 독식하자 대한민국의 금메달 독점을 피하려고 세계양궁협회가 매번 양궁 경기방식을 바꿔 가면서 한국 선수들을 견제했다.

실례를 들면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토너먼트로 경기방식을 바꾸자 현대그룹은 선수들이 흔들림 없이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시끄러운 사물놀이 환경을 만들어 훈련에 집중시켰고, 프로야구 경기에서 소음극복 훈련을 시행했다. 2010년 세트제로 룰이 변경되자 현대그룹은 선수들의 강인한 정신력을 키울 수 있도록 다이빙, 번지점프 훈련을 겸용해왔다.

최근에는 올림픽 경기장 환경을 그대로 카피한 훈련장을 만들어서 선수들이 편하게 운동에 집중토록 후원했다.

지난 37년간 양궁협회 후원사인 현대자동차그룹은 아낌없는 지원을 하면서도 선수단 선발 및 협회 운영에 일체 관여하지 않고 있지만, 단 한 가지 원칙을 제안했는데 협회 운영은 투명하게, 선수 선발은 공정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후원의 결과가 바로 금메달 획득으로 연결되면서 여자양궁은 1988년 서울올림픽부터 2020년 동경올림픽까지 단체전 9연패라는 불가사의 성적을 거뒀다.

현대그룹이 적극적으로 지원한 김수녕 선수는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2연패 후 은퇴했다. 그러나 김수녕은 1999년 선수로 복귀하고 자신의 실력만으로 대표선수가 됐으며, 2000년 호주 시드니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수상했다.

최근 동경올림픽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은 앞서 설명한 대로 일본 동경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을 그대로 100% 재현한 진천선수촌 훈련장에서 하루 500발 이상씩 쏘면서 실력을 향상한 결과가 그대로 성적으로 이어지면서 여자는 개인과 단체에서 2개의 금메달, 안산 선수는 혼합 금메달로 양궁의 3관왕에 등극했다. 또 남자는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5개 종목 중 4개를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 양궁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LA)대회부터 누적으로 금메달 27개, 은메달 9개, 동메달 7개를 획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양궁 종목에 걸린 전체 금메달의 69%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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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8일 경기도 화성시 현대자동차남양연구소에서 연구개발총괄 담당 양웅철 부회장,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강신성 회장, 봅슬레이 국가대표팀 감독 및 선수단 등이 참석한 가운데 ‘봅슬레이 독자 모델 전달식’이 열리고 있다. (출처: 뉴시스)

◆현대차, 평창올림픽서 차량과 광고 등 지원

현대그룹에서 운영 중인 동계스포츠단은 공식적으로는 없다. 하지만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2018년 평창올림픽(패럴올림픽 포함)에 공식적 지원협약을 체결하고 총 100억원을 지원했다. 세계인의 축제인 평창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열릴 수 있도록 협력하면서, 대한민국 선수들의 저력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다. 평창 유치를 측면 지원하던 현대자동차는 2009년부터 김연아 선수를 적극적으로 후원했고, 그랜드 스타렉스 리무진과 제네시스, 에쿠스 등 차량과 광고 등을 지원했다. 그러면서 밴쿠버올림픽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피겨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따는 데 힘을 실어줬고, 이어진 소치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할 수 있도록 적극 후원했다.

기아자동차도 밴쿠버올림픽부터 올림픽 메달 획득 가능한 선수를 발굴해서 특히 한국이 약한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선수들을 후원해 금메달을 따는 데 공헌했다.

좀 더 상세히 설명하면 이상화 선수를 기아자동차의 홍보대사로 임명했고, 그가 운동에만 전념토록 후원했다. 이상화가 500미터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밴쿠버와 소치올림픽을 2연패 하는 쾌거를 거두는 데 일조했다.

그리고 현대자동차는 비인기 종목인 봅슬레이(백분의 일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초스피드 경기)에 대한 썰매를 연구하고 한국 선수의 체형에 최적합하고 부드러운 코너링 구현을 위해 동체 유연성을 강화했다. 또한 공기저항을 최소화한 봅슬레이 외관을 ‘Victory Blue’의 바탕색으로 사용해 강인한 이미지를 주면서 태극 문양을 상징하는 청색과 적색을 통해 한복의 자연스러운 곡선을 표현함으로써 속도감과 역동성을 높여 동양인 최초로 평창올림픽에서 윤성빈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또한 평창올림픽에서 현대차그룹은 친환경차인 수소차와 전기자동차를 수백 대 무료로 지원해서 평창과 강릉에 오가는 임원진은 물론 참가 선수들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경기하도록 후원했다.

더 나아가 현대자동차는 2012년부터 국제스키연맹의 공식 스폰서로서 스키점핑 월드컵시리즈, 스키 플라잉 챔피언십, 노르딕 월드스키 챔피언십 등의 대회를 후원했다.

끝으로 올림픽은 지구촌에서 벌이는 최대의 스포츠 잔치이므로 이념 간의 대결이 아닌 순수 스포츠대회로 영원한 전진이 있길 고대한다.

(정리 = 유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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