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결국 민주당이 거리로 나섰다. 푹푹 찌는 한여름에 아스팔트 위에서 정치투쟁을 한다는 게 그리 간단치 않을 것이다. 더위도 더위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이 박수를 보낼 리 없다. 그렇잖아도 싸우는 게 지겨운 판인데 거리로 나와 싸우겠다는 야당 정치인들을 곱게 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있다. 거리에서 싸움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물로 손에 쥘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길거리 투쟁의 명분과 실리가 그다지 확실치 않다는 얘기다. 자칫 ‘오버 액션’으로 끝나지는 않을지 우려될 따름이다.

“이런 야당은 처음 본다”
민주당이 거리로 뛰쳐나간 이유는 김한길 대표가 밝혔듯이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선거개입의 진상규명을 통해 국정원 개혁을 이뤄내겠다는 점이다. 여기까지는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최근 권력기관의 전횡을 보노라면 험한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이다. 특히 국정원의 최근 행태는 상식 이하의 수준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정보기관이라는 위상이 초라하다 못해 부끄러울 지경이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정말 궁금할 따름이다.

국정원이 자신들의 치부를 물타기 하기 위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불법 공개한 것은 어지간한 상식을 가진 국민이라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문제와 관련한 국정조사에 새누리당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이대며 사실상 좌초시키고 있다는 것도 알 만한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오죽했으면 국정조사 기간 중에 여름휴가를 이유로 자리를 뜨고 말았겠는가. 그건 그렇다 치자. 국정원의 선거개입 진상이 낱낱이 드러날 경우 새누리당이 처할 곤경과 박근혜정부가 입을 상처가 간단치 않을 것이기에 그 진실규명 작업부터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는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정당정치와 의회정치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민주당은 정당정치와 의회정치에서 야당을 대표하는 정당이다. 야당이 강건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동력을 잃게 된다. 독재정치가 대체로 부패하거나 국민으로부터 쫓겨나는 것도 이런 이유라 하겠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의 독주, 새누리당의 오만한 행태와 맞서 싸울 세력은 민주당뿐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싸우기는커녕 오히려 질질 끌려 다녔다. 심지어 민주당 내부의 혼선까지 빚어져 “도대체 이런 야당은 처음 본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새누리당 강경파가 주도하는 정치공세에 민주당은 벼랑 끝에서 ‘장외투쟁’이라는 반전 카드를 뽑은 셈이다. 한국정치에서는 장외투쟁도 잘 만 쓰면 유용한 전략이다. 다만 길거리 시민들의 지지가 있을 때의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민주당에 과연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박수를 보내줄까. 물론 원내에서 죽느니 차라리 길거리에서 죽겠다는 취지라면 할 말이 없으나 그 효과만큼은 미지수다. 게다가 민주당이 ‘민주주의 위기’를 말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지율은 민주당보다 두 배 이상이다. 그렇다면 여권도 문제지만 민주당이 더 큰 문제가 아니겠는가.

민주당이 길거리로 나선 이상 이제는 보다 근본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국정조사 증인 문제에 매몰될 상황이 아니다. 김한길 대표가 ‘비상체제’에 들어간다고 했다. 그 비상체제는 대여관계뿐만 아니라 당혁신과도 맞물려 있다. 이번 기회에 길거리에서 당의 근본적인 스탠스를 잡아야 한다. 무기력한 야당으로는 어떤 개혁도 어떤 투쟁도 성공할 수 없다. 길거리에서 우물쭈물 하다가 원내로 와서 또 무능한 모습을 보이면 정말 답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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