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객실 여승무원 최초 비행 3만 시간 돌파
하루 2시간 운동… 철저한 자기관리로 대기록 달성
[천지일보=임태경 기자] 하늘의 미소라 불리며 단아한 유니폼을 입고 세계를 누비는 항공기 승무원. 유창한 외국어 실력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얼굴, 몸에 밴 친절, 전 세계 각지를 돌아다닐 수 있는 직업적 특성까지. 여성이라면 한 번쯤 꿈꿔봤을 선망의 직업이다.
국내 여승무원으로는 최초로 비행 3만 시간 돌파 기록을 세운 이가 있다. 명지대학교 사회교육원 항공서비스경영학과에서 후배 승무원을 양성하고 있는 이순열 교수(57)가 그 주인공이다.
이 교수는 대한항공 사무장으로 근무했던 2010년 12월 23일 밴쿠버발 인천행 근무를 마치면서 3만 시간 비행을 돌파했다. 비행 3만 시간은 거리로 치면 약 2650만㎞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는 지구를 662바퀴 돈 것과 같고, 하늘에서 근무한 시간만 3년 6개월에 이른다. 우리나라 객실 여승무원 중 비행 3만 시간을 넘어선 것은 이 교수가 유일하며 남자 승무원을 포함하더라도 단 4명 만이 이 기록을 갖고 있다. 현역에서 은퇴한지 2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항공기에서 승객을 대하는 듯한 미소로 반갑게 맞이해 주는 이순열 교수를 명지대에서 만났다.
“후배들이 꿈을 이룰 수 있고 성취감과 행복감을 느끼는 길을 선택했으면 좋겠어요”
이 교수는 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내 꿈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고 어렸을 때 동경의 대상이었던 승무원에 도전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승무원이 되고 싶어 하지만 좌절하고 실패한 적도 있을 것이다. 그도 그렇다.
“저도 두 번째에 합격 되었어요. 꿈을 위해 나를 가꾸어 나간다면 그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강의할 때 후배들에게 조언하는 말이다. 학벌이나 스펙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 교수는 자기 관리도 철저히 했다. 세계 곳곳을 누비지만 시차 적응만큼은 베테랑이 돼서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체력 유지를 위해 20년 동안 헬스장에 꾸준히 나갔으며 비행이 없는 날에는 조깅을 하는 등 하루 2시간 운동을 거르는 날이 없었다. 철저한 자기 관리 속에 대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
“손님을 피하고 꺼리면 가까이 있지 않아도 손님이 그 마음을 읽습니다.”
승무원은 승객에게 항상 열린 마음으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것이 ‘인성’이라고 강조한다. 서비스 정신은 그 사람의 인성에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그는 “후배들을 볼 때에 외모나 외국어 등 외적인 모습은 좋아졌지만 승무원이 지녀야 할 자부심. 특히 타인을 배려하고 인정하는 인성 부분이 부족한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손님이 별다른 이유 없이 화를 내도 내가 제공한 서비스가 잘못된 것이 없는지 생각해본다”는 그는 천상 객실승무원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승객은 누굴까? 이 교수는 비행 중에 만난 필리핀 여고생이라고 말했다. 선천적으로 비위가 약한 그는 멀미로 토하는 승객을 보면 피하려 한 적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비행 중 급체한 필리핀 여고생이 갑작스럽게 구토를 했고 어쩔 수 없이 기도하면서 맨손으로 토사물을 받아냈다. “토사물이 얼굴과 옷에 묻었을 땐 정신이 아찔했는데 그 후에 신기하게도 토사물을 봐도 전혀 냄새를 못 느끼게 되었고 부담을 덜게 되었어요.”
이 교수는 비행하면서 배움에 대한 끈도 놓지 않았다. 틈틈이 공부해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현재는 중세미술 박사과정을 마쳤다. 그는 종교미술 지식과 경험을 살려 문화적으로 소외된 이웃을 위해 갤러리 투어 등의 봉사활동을 할 계획이다.
30년이 넘는 시간을 하늘에서 보낸 이순열 교수. 정년퇴임 후 스페인 산티아고로 도보 여행을 가려 했지만 그 계획을 잠시 미뤘다. 그가 청춘을 보낸 그곳으로 후배들을 인도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길잡이 역할이 끝나면 그가 인도한 후배 승무원의 서비스를 받고 멋지게 산티아고로 비행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