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지난달 24일 늦은 저녁, 순안공항에 도착한 고려항공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는 김정은 특사 최룡해의 얼굴에서 우리는 분명한 한 가지를 읽을 수 있었다. “이제 중국은 없다.” 이것은 비단 최룡해 혼자만의 작심은 아니었다. 이튿날 북한 국방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중국의 비핵화 간섭에 심한 짜증을 내며 마이웨이의 자주권을 재강조했다.

그때부터 노동당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지난 6일 사상 초유의 ‘멀티남북대화’를 제안하였다. 남북대화의 시기와 장소 등에서 이처럼 북한이 너그러움을 보인 적은 없다. 왜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제 북한은 중국의존도를 버리고 대남의존에 명운을 걸겠다는 것이다.

알려진 대로 시진핑 시대 중국의 대북정책은 ‘안정, 개방, 비핵화’이다. 마치 MB정부의 ‘비핵, 개방, 3000’을 듣는 것 같지 않은가. 북한의 비핵화는 중국이 북한의 급소를 누르는 것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주도권을 분할해 가져올 기회가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북한은 이번에 6.15와 함께 7.4공동성명을 강조하며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향수를 자극했다. 꼭 41년
전에 진행된 최초의 공식 남북대화 당시 북한의 국력은 우리보다 조금 앞서 있었다. 북한은 기고만장해 독일에서 70여 대의 벤츠 승용차를 수입해 우리 기자들에게까지 의전용으로 제공했다.

그런데 오늘의 환경은 어떤가. 김정은 체제는 아직 그 취약한 3대 세습체제의 세팅도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고, 탈북자의 연이은 탈북과 군량미까지 풀어야 할 정도의 기근에 시달리면서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군부 강경파에 귀가 솔깃해 있던 김정은은 이제 ‘선군후로’를 ‘선당후군’으로 확정하고 자기 스타일을 가동시키고 있다.

김정은은 자기의 고향 원산시를 국제휴양도시로 꾸리기로 한 가운데 거기에 싱가포르의 카지노에 버금가는 도박장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이번 금강산 관광 재개 요구에는 한국 관광객들의 잭팟 욕구를 충족시켜 외화를 벌겠다는 욕심도 담겨져 있다. 우리는 이런 북한의 욕심에 끌려다니며 대화무드에 취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박근혜정부가 제안한 DMZ세계평화공원, 파주일대의 제2합작공단 건설 등 우리의 요구들을 패키지로 묶어 합의함으로써 북한이 과거처럼 합의와 체결을 손바닥 뒤집듯 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과거 정권의 남북대화들은 이벤트에 그쳤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북한만 탓할 수 있을까. 박근혜정부는 뭔가 달라야 한다. 북한의 우격다짐에는 미소로 응수하고 무조건적인 지원에는 상호주의를 적용해야 한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까지 했던 동독에 대한 정치범 석방 노력 등을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이번 대화에서 우리는 뭔가 큰 것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국군포로의 귀환과 탈북자의 강제북송 저지 등도 북한이 외면하기 어려운 아킬레스건이다. 기존의 진행형 내지 복원용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새로 제안한 새로운 안과 균형있게 합의를 이룬다면 남북대화는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9월에는 모스크바에서 G20정상회담이 다시 열리게 된다. 그전에 6월 7일의 미중정상회담, 6월 27일의 한중정상회담이 열리고 그 뒤따라 7월 27일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8월 15일에 북일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이것은 21세기 들어 가장 격동하는 국제정치의 변혁이 될 것이다. 그 중심에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 있다. 이번 기회에 우리는 한반도 평화번영의 이니셔티브를 완전히 틀어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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