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모처럼 남과 북이 웃었다. 6년 만의 웃음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장장 16시간의 마라톤회담은 그만한 가치를 생산해 냈다. 혹자는 우리의 요구조건인 ‘발전적인 정상화’가 빠져 아쉽다고 하지만 합의문 세 번째 조항에는 “남과 북은 설비 점검과 물자 반출 등을 위해 개성공단에 출입하는 남측 인원들과 차량들의 통행 통신과 남측 인원들의 안전한 복귀 및 신변안전을 보장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10일부터 재개되는 실무접촉에서 미진한 부문을 채워나가기로 했으니 여유만만하다.

이번 대화에서 북한은 시종일관 낮은 자세를 취했다는 것이 대화 참가자들과 기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왜일까? 북한에게는 다급한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 번째는 외교적인 것으로 한미정상회담과 한중정상회담, 그리고 ARF 등에서 26대 1이란 고립무원의 처지를 확인하였다. 외교적으로 북한이 직면한 장벽에는 구멍이 없다.

두 번째는 통치자금으로 사용할 외화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유엔안보리 제재에 따른 미국과 중국의 실효적 대북 제재는 김정은 체제의 통치자금을 거세게 압박하고 있다. 7.27 이벤트 마련을 위한 자금도 절대 부족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김정은의 선물 마련을 위한 자금 역시 고갈에 직면하고 있다. 최근 김정일의 네 번째 부인 김옥이 모습을 감추었는데 그의 부친은 노동당 재정경리부 부부장 김효다. 통치자금 마련을 둘러싸고 갈등과 충돌이 있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북한은 이면체면 다 버리고 우리 쪽에 손을 벌렸고 우리 정부는 웃어가면서 북한을 요리하는 지위에 올라서게 되었다.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드디어 빛을 발하는 출발점에 서게 된 것이다. 이번 회담 성공의 중요성은 앞으로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의 기본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며 DMZ세계평화공원 건설 및 파주지구의 제2개성공단 건설 등 한반도 평화구상의 여러 프로젝트들을 풀어나가는 기초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어 마땅하다.

문제는 북한이다. 향후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에 당분간 비중을 둘 것이란 점에는 이의가 없다. 하지만 북한은 예측 불허의 체제다. 당분간은 민족공조가 필요하지만 외교적 출구가 생기면 언제 또 그랬냐는 식으로 뒤집을 가능성도 있다. 6자 회담 등이 열려 북한의 몸값이 올라가면 그들은 대남정책을 바꾸고 자신들의 레버리지를 요상하게 휘두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북한 권력 내부도 변수가 될 수 있다. 김정은 체제는 아직도 파워 쉬프트 중에 있다. 권력이동이 중반에 접어들었으며 7.27 이후나 내년 최고인민회의에서 그들의 국가수반인 김영남을 김양건으로 교체한다는 설이 벌써 평양에 파다하게 퍼져 있는 상태다.

김양건은 원래 노동당 국제부장 출신이고 김영남 역시 노동당 국제부장 출신이다. 올해 85세의 김영남과 71세의 김양건의 세대교체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뿐 아니라 당과 정권, 군부에서도 세대교체는 빠르게 진행될 전망이다. 김정은이 굳이 김정일 시대의 노간부들을 붙잡고 우왕좌왕할 필요가 없다. 그는 얼마든지 자기식의 통치명분을 추진할 만큼 조직정비를 끝낸 상태다. 자기 사람을 등용하여 자기식의 통치를 펼치는 것은 권력의 보편적 생리다.

김양건이 북한의 정권 수반이 된다고 남북관계가 잘되리란 보장은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어느 정도 잘 알고 있는 그가 고위직으로 올라가는 것은 남북관계 개선의 측면에서는 부정보다 긍정의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왜, 김양건은 남북관계 측면에서는 최고의 ‘비들기파’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남북관계 발전의 훼방꾼들은 모두 강경한 군부 인사들이었다. 하지만 그 강경파들, 즉 국방위 부위원장 오극렬과 김영춘 당 군사부장, 김격식 총참모장 등은 너무 고령이다. 집에 돌아가 쉴 때가 지났다. 고립무원의 북한 정권에게 남북대화는 하나의 작은 변수일지 몰라도 김정은 체제 생존의 유일한 탈출구라는 데는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할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