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냉전이 기승을 부리던 50‧60년대에 김일성 주석이 베이징을 방문하면 최고의 국빈이었다. 환영인파는 아예 베이징 역에서부터 아우성이었고 영빈관으로 이어지는 연도환영도 뜨거웠다.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때도 정치국 상무위원 9명을 모두 만나는 파격적인 환영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 3대 세습의 지도자 김정은은 베이징 방문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대관절 언제 즈음 김정은은 베이징행 열차에 몸을 실을 수 있을까.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보며 우리는 과연 이제 한반도의 북쪽에 중국이 필요로 하는 ‘완충지대’가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는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전통적으로 중국인들은 “불편한 것은 참아도 불리한 것은 참지 못한다”는 관습을 지니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베푸는 시진핑 주석의 극진한 친절과 환대의 의미는 바로 북한의 김정은에게 주는 멸시와 경고의 의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지난번 최룡해 특사의 접견과 이번 우리 대통령의 환영은 말 그대로 대조적이었다. 북한의 제3차 핵실험은 새로 등장하여 ‘신대국론’을 펼치려는 시진핑 체제에 암적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불이익의 정도가 아니라 미국의 대중국 MD정책의 강화 등 안보비용 증대의 명분이 되기에 충분한 것이라고 중국지도부는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 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대중국 MD증강을 완화하는 대신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확실하게 요구하는 ‘밀약’이 채택되었다는 설이 있다. 중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충분히 미국과 그렇게 협상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은 결국 동북아시아의 화약고라는 데 일본, 한국, 미국 등이 동의하고 있고 중국 역시 이하동문이다. 향후 한국과 중국의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는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이에 공통분모는 너무 많으며 북한의 비핵화는 그중 첫 번째 사항일 것이다. 한반도의 북쪽 북한은 우리 한국과 중국 모두에게 더 이상 ‘완충지대’가 아니라 ‘지뢰밭’인 셈이다. 그 지뢰밭만 갈아엎으면 바로 어제까지 사흘 동안 베이징을 뜨겁게 달구었던 한중 친선과 협력의 축제는 영원불멸할 것이다.
 

우리는 김정은에게 진정으로 권고하고 싶다. 중국의 지원과 협력 없이 북한 체제의 체제재생산은 공염불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김정은은 오히려 중국의 비핵화 요구에 응하는 것으로 북한의 지정학적 활용을 지속할 수 있다. 북쪽으로 중국과 남쪽으로 한국에 엇선다면 결국 북한은 사면초가에 놓이는 것이다. 또 있다. 중국은 김정은 체제에 대해 ‘안정‧개방‧비핵화’의 3대 조건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북한이 빨리 과거로부터 단절하여 변화의 길을 걸으라는 시그널이다.
 

확언하건대 북한은 1~2년 안에 개혁과 개방의 길을 걸으면 회생이 가능하지만 그 반대로 현재에 안주하려 한다면 미래는 접어야 한다. 과거에는 북한의 비핵화 요구 등에서 한-미 대 북-중의 팽팽한 구도였지만 이제는 한-미-중 모두가 북한을 옥조이고 있지 않는가. 6자회담, 그거 ‘페이퍼 미팅’에 다름 아니다. 미국과 중국 등이 한가하게 와인잔이나 부딪치며 베이징에서 노닥거리는 6개국 외교관들의 ‘유희’를 더 이상 좌시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김정은이 결단하여 핵무기 개발을 접고 동북아 평화프로세스에 동참한다면 얼마든지 북한의 등소평이 될 수 있다. 우리 한국에 최첨단 ‘디지털 자원’이 넘쳐난다면 북한에는 재래식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마식령 스키장 건설에서 보여주듯 북한도 마음만 먹으면 잠자고 있는 관광자원, 천연자원을 얼마든지 돈으로 바꿀 수 있다. 박근혜정부가 주창하는 ‘창조경제’ 김정은이 따라하면 안 된다는 논리는 없다. 오히려 적극 환영하고 지원해 줄 것이다.
 

김정은이 그 천연스러운 나이로 일부 강경 군인들의 ‘군사놀이’에 유혹된다면 이건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니다. 북한은 전쟁수행은커녕 군사놀이 화약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고 더구나 군량미 창고의 밑창이 드러나고 있지 않는가. 이판사판도 어느 정도 기운이 남아 있을 때 가능하다. 자칫하다 제풀에 쓰러질 수 있다. 7.27의 함성 역시 일장춘몽이기는 마찬가지다. 항일의 이데올로기를 ‘전승’으로 바꾼다고 뭐가 달라질 수 있겠는가. 김정은이 하루라도 빨리 핵개발을 포기하고 베이징행 열차에 올라타는 것이 북한이 사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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