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스포츠 취재기자 시절, 유독 선수들의 별명 만드는 데 신경을 많이 쓰는 선배 기자가 있었다. 선수들의 외모와 경기 스타일을 참고해 신문에서 쓰기 좋은 별명을 만들었다. 승패나 경기분석 위주의 밋밋한 보도보다는 선수들의 스토리를 담아서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데 별명이 감초역할을 톡톡해 해내기 때문이었다. 신문에서 보도된 별명이 해당 선수의 독특한 스타일과 개성을 잘 보여주면 다른 기자들도 이를 받아쓰는 경우가 많았다. 스포츠팬들이 알고 있는 유명 스타들의 별명은 거의 대부분이 이처럼 언론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보면 될 것이다.

14일 TV로 생중계된 LA 다저스의 류현진의 경기를 집거실에서 둘째 아들과 같이 보면서 류현진의 별명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국내에서 ‘괴물(영어 몬스터)’ 투수라는 별명을 갖게 된 이유를 대학생 아들에게 물었다. “글쎄요, 워낙 덩치(나중에 인터넷에 찾아보니 체격이 188㎝, 115㎏으로 나와 있었다)가 큰 데다 괴력의 투구력을 보여줘 그런 별명이 붙지 않았을까요”라는 대답이었다. 이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와의 경기에서 삼진 9개를 뽑아내며 6회까지 단 1실점으로 막고(7회에 2안타를 맞고 주자 2명을 내보내며 교체된 후 2자책점을 기록했지만), 2루타를 포함해 3안타를 터뜨리며 투수와 타자로서 발군의 활약상을 펼쳐 ‘괴물’의 위력을 메이저리그에서도 여실히 보여주었다. 괴물로서의 별명 이미지로 자리 잡은 류현진에게 어울리는 활약상이었던 것이다.

이날 투타에 걸쳐 크게 활약한 류현진은 미국에서는 ‘괴물’ 이미지와는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비쳐진 것 같다. 이 세상 최고의 야구 선수들이 기량을 겨루는 메이저리그에서 마치 자신만의 야구를 즐기는 듯한 류현진의 플레이에 매료된 미국 언론들은 류현진에 대한 평가를 새롭게 내렸다. LA 다저스 연고지인 LA 타임스는 LA 다저스가 7-5로 승리한 뒤 메이저리그 2승째를 거둔 류현진에 대해 “체이스 필드에서 경기한 대부분의 선수들은 류현진과 같은 플레이를 했던 마지막 순간은 아마도 고등학교 시절이었을 것이다”고 보도했다.

류현진은 통역을 통한 대답에서 “4번 타자로 활약하던 고등학교 때조차도 한 게임에서 3안타를 때린 적이 없다”며 이날의 경기는 경쟁이 없이 플레이를 즐긴 초중학교시절의 모습 같았다고 밝혔다. LA 타임스는 이날 경기 중간쯤 “다이아몬드 백스 방송캐스터인 스티브 베르티아우메와 밥 브렌니는 허스키한 음성의 왼손투수 류현진에게 ‘베이브 류스’라는 닉네임을 붙여 불렀다”고 전했다. 메이저리그 전설적인 홈런타자 베이브 루스가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투수로서 첫 프로생활을 시작한 것을 두고 붙인 닉네임이었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새 별명을 얻게 된 것은 새로운 미국 야구무대에서 성공적인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는 생각이다. 별명이 생겼다는 것은 그만큼 선수로서 매력이 있고, 실력도 검증이 됐다는 것이니까. 그것도 과분할 정도로 미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베이브 루스의 별명을 빗대서 갖게 됐다니 아주 좋은 일이다. 새 별명은 류현진에게는 새로운 상징성을 만들어주는 것과 함께 그만큼 책임과 부담감도 안게 될 수 있다. 최고의 선수 이름을 빌린 별명이 붙은 만큼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류현진은 이 별명에 대해 “아직은 아니다. 너무 과한 것 같다”며 웃으면서 LA 타임스 기자와 말했다고 한다.

지난 1990년대 후반 박찬호가 한창 LA 다저스에서 선발투수로 위력을 보여줄 때 ‘코리안 특급’이라는 별명을 얻을 때와 류현진의 새 별명 ‘베이브 류스’와는 그 이미지와 특성 자체가 다르다. 박찬호의 별명은 ‘한국에서 날아온 강속구의 투수’라는 의미가 담겨있으나 류현진의 별명은 ‘미국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새롭게 쓸 선수’로서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류현진이 앞으로 새 별명에 걸맞게 실력으로 인정받는 메이저리그의 스타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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