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의사가 평양 안병찬 변호사를 면회하고 동포에게 전한 것으로 1910. 3. 25 대한매일신보 게재) ⓒ천지일보(뉴스천지)

 

동포에게 고함

“내가 대한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삼 년 동안을 해외에서 풍찬노숙하였으나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 우리들 이천만 형제자매는 각자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고 산업을 진흥하여 나의 뜻을 이어 자유독립을 이룬다면 죽는 자 한이 없겠노라.” 

[천지일보=송태복 기자] 남산에 수치와 오욕의 역사만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국권을 침탈한 우리 민족의 원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도 남산 산책로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현 기념관은 1970년 10월 26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와 국민의 성금으로 세워졌다.

기념관은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1909년 10월 26일을 기념해 건립됐다. 40여 년이 지나 시설이 노후화됨에 따라 2010년 현재의 모습으로 신축 개관했다.

안중근 의사는 민족의 원수를 저격했을 뿐만 아니라, 옥중저서 ‘동양평화론’을 남겨 한‧중·일 삼국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있는 중국 하얼빈 시민들은 “안중근 의사가 추구한 동양평화의 정신을 오늘날 중국인도 배웠으면 한다”며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오늘의 관점에서 봐도 선구적인 사상이며, 한국에서 안중근의 평화사상을 왜 국제화하지 못하는가”라고 오히려 되묻는다. 또한 동양평화론은 20세기에 서구 유럽 등에서 구상한 평화보다 70년이 앞서는 사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안 의사는 신실한 천주교인으로 내세에 소망을 두었으며, 선생으로 후학에게 민족정신을 일깨웠다.

 

 

 

▲ 1909년 1월 노령(露領) 카리에서 안중근 의사를 포함한 동지 12명은 한자리에 모여 왼손 무명지를 잘라 그 피로 태극기에 대한독립 넉자를 쓰고 하늘과 땅에 맹세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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