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남산공원 나들이에 나선 시민들의 밝은 얼굴은 이곳이 과거에 공포정치 요람이었다는 사실을 잊게 한다(왼쪽). 서울타워 야경. 서울타워는 공기오염도에 따라 빛의 색깔이 바뀐다(오른쪽). ⓒ천지일보(뉴스천지)

오욕의 역사현장
국권 일제에 몰래 넘긴 곳
한일강제병합조약 체결지
민족문제연구소가 밝혀내

공포정치의 현장
남산 ‘중앙정보부’ 악명
독재정권 유지위해 존재
수많은 인권탄압 자행돼

남산 회복 가속화
90년대부터 제모습찾기
남산르네상스 정책추진
세계적 관광명소로 우뚝

[천지일보=송태복ㆍ김성희 기자]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빛과 그림자’는 70~90년대 한국 사회의 변화를 비교적 실감 나게 보여준다. 드라마 주인공 강기태와 주변 인물의 먹고 먹히는 관계 속에 자주 등장하는 곳이 ‘남산 중정’이다. 남산 중정은 과거 남산에 있었던 중앙정보부(안기부)를 가리킨다.

지난 주말 서울의 명소이자 경복궁 앞산인 남산에 올랐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오히려 자주 가지 않았던 남산은 외국 관광객이 꼽은 서울의 첫 번째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남산의 주말 풍경은 가족, 연인, 관광객들로 인해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겉으론 평화만 숨 쉬는 곳, 그러나 누군가에겐 아픔으로 기억되고 있는 남산은 자유, 인권, 성장이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한다.

명당을 두른 명산

높이 262m의 남산은 목멱산, 인경산, 마뫼 등으로도 불렸다. 기반암은 화강암이다. 남산이라는 이름은 경복궁의 앞산이라는 뜻이다. 서울과 경복궁의 풍수해석을 살펴보면, 경복궁을 뒤에서 받쳐주는 주산(主山)은 북악산, 마주하는 조산(祖山)은 북한산이다. 북악산과 북한산을 중심으로 서울을 외곽에서 호위하는 외사산(外四山, 바깥쪽 산 4개)은 북한산-아차산-관악산-덕양산(행주산성)이다. 북악산을 중심으로 東으로 낙산, 西로 인왕산, 南으로 목멱산(木覓山: 남산)은 서울을 내곽에서 에워싼 내사산(內四山, 안쪽 산 4개)에 해당된다.

풍수학자들은 서울이 풍수적으로 완벽한 위치에 있다고 평한다. 특히 내사산은 서울을 명당 중의 명당을 만드는 명산들로 평가된다.

▲ 남산의 명물인 연인들의 열쇠장벽 ⓒ천지일보(뉴스천지)
현재의 남산은 다양한 휴식공간과 도서관 등 여러 공공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총면적 2971㎢의 산 일대가 시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조선시대에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던 국사당 터와 통신제도에 중요한 구실을 한 봉수대가 남아 있다. 남산 대표 명물 서울 타워는 정상에 솟아 있는 높이 236.7m의 송신탑으로 사방 50㎞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휴식·관광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또한 탑골공원의 정자를 본떠 만든 팔각정이 있으며, 팔각정과 순환도로를 연결하는 관광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다. 숲이 잘 보호되어 도심지임에도 꿩, 다람쥐 등 산짐승이 많다. 시립 남산도서관 주변에 이황과 정약용의 동상이 있으며, 조금 더 오르면 백범 김구 동상,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동상 등을 만날 수 있다.


◆남산에 숨겨진 수치와 오욕의 역사

가족, 연인, 외국 관광객들로 넘치는 남산은 겉모습과 달리 어두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앞서 언급한 드라마 ‘빛과 그림자’를 통해 보듯 1970~80년대 남산 중턱은 공포정치의 상징이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중정, 안기부의 전신)와 안기부가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1961~95년까지 자리해, 남산은 독재와 인권탄압의 상징이었다.

의문사를 당한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 사건,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이 모두 남산의 정치공작이었다. 당시 조작간첩 사건을 수사하던 안기부 제5별관은 현재 서울시청 별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인근의 서울유스호스텔·교통방송·서울종합방재센터 등도 당시 안기부 건물이었다. 당시 끌려가는 사람들은 차량 방향이나 높은 타워를 보고 막연히 남산으로 추정했을 뿐이었다. 피해자 대부분이 한밤중에 연행돼 심한 고문 끝에 자백을 강요당했다. 법 위의 무법천지였던 셈이다.

남산은 일제의 통감관저가 있던 곳으로 1910년 8월 22일 한일강제병합조약이 비밀리에 체결되었던 치욕의 장소다. 수년 전 민족문제연구소는 구한말 자료를 뒤져 한일강제병합이 체결됐던 통감관저를 찾아내고 그 자리에 비석을 세웠다. 이후 조선 국권을 일제에 넘겨준 자리와 박정희 정권이 중앙정보부 막사를 처음 설치한 장소가 나란히 붙어 있음을 알게 됐다. 시대를 넘어 수치와 오욕의 역사 현장이 나란히 했으니 기막힌 우연이라 할 것이다.

남산의 회복과 치유

서울시는 1990년 ‘남산 제모습찾기 종합계획’을 수립해 남산의 문화유적 복원 및 생태계 회복에 나섰다. 이 사업의 최대 목적은 잠식시설(蠶食施設) 이전을 통한 자연경관 및 남산의 상징성 회복과 서울의 중심적인 역사·문화·휴식공간을 만드는 데 있었다.

1996년 잠식시설 이전사업으로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 안전기획부(안기부), 외국인 아파트 등 113개 동이 철거되거나 이전되었다. 중구 필동에 있던 수방사는 1991년 5월에, 안기부는 1995년 12월에 각각 이전되었으며 1994년 11월에는 외국인 아파트가 철거되었다.

▲ 남산 한옥마을 ⓒ천지일보(뉴스천지)

문화유적 복원사업의 하나로 남산 한옥마을이 약 7만 9937㎡에 이르는 옛 수방사 부지에 조성되었다. 남산 한옥마을은 1998년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된 한옥 5개 동을 이축·신축해 개장했다. 한옥마을 내에 340m에 이르는 계곡과 연못, 정자와 누각, 화단, 잔디밭 등이 조성돼 인기 관광코스로 자리 잡았다. 한옥마을엔 다양한 프로그램과 체험행사가 마련돼 있다. 기자 일행도 남산 한옥마을을 둘러보는 동안 화려한 태권도 시범을 볼 수 있었다.

2009년도에 서울시는 남산 제모습찾기 사업을 확대한 남산르네상스 정책을 발표했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남산을 시민의 친숙한 여가공간으로, 서울의 대표적 관광상품으로 재창조 하겠다”며 “센트럴 파크가 뉴욕의 자부심이듯 남산이 우리 서울의 자부심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정책 취지를 밝혔다. 남산르네상스 정책의 주요 전략은 ▲접근성 개선 ▲생태 및 산자락복원 ▲역사복원 ▲경관개선 ▲운영프로그램 등이었다.

현재 관련 사업의 일환으로 성곽복원 사업이 진행 중이다. 남산의 각종 복원 사업을 모두가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남산에서 빚어진 인권탄압과 오욕의 역사를 ‘아우슈비츠 수용소’처럼 역사관으로 남겨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겉으론 한없이 평화로운 관광명소지만, 이면에는 영문도 모른 채 사라져간 누군가의 억울한 흐느낌이 있어서 그저 기쁨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남산. 일본에 국권을 헌신짝처럼 내준 수치스런 역사와 오욕이 숨겨져 있는 그 산 입구에 안중근 의사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앞에 세워진 안 의사 동상은 지난 과거를 일시에 청산하고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변화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듯 끝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롭게 창조되어 가는 남산이 자신을 찾는 세계인에게 기쁨이 되고, 세계 속에 우뚝 솟은 대한민국의 위용을 더 널리 전해주길 바랄 뿐이다.

남산에 드리웠던 어두움이 길었던 탓에 남산의 현재 모습은 더 밝고 빛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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