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픽션] 관찰력 기르기 훈련
[미니픽션] 관찰력 기르기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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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호 소설가
저는 도박사입니다. 기업의 인수 합병에 동원될 만큼 꽤 유명하죠. 이미 여러 번 참여한 경험도 있고요. M&A에 도박사가 왜 끼냐고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돈 때문이죠. 일단 합병 절차를 밟게 되면 제일 난관이 가격, 즉 호가 문젭니다. 파는 쪽에서는 되도록 많이 받으려고 하고, 사는 쪽은 그 반대죠. 여기에 도박사의 능력이 발휘되는 겁니다.

어떻게, 사기라도 치냐고요? 천만에! 진정한 도박사는 ‘타짜’와는 다릅니다. 속임수를 쓰지 않죠. 오직 상대의 속을 꿰뚫어볼 관찰력을 발휘할 뿐이랍니다.

관찰력이 협상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요? 잘 모르시나 본데…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밝히게 된 그 첫걸음이 바로 관찰입니다. 만유인력을 알아낸 것 또한 관찰력 덕분이고요. 사실 우리는 주위를 잘 살펴보기만 해도 남들의 비밀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옆집 아주머니의 행동거지를 잘 살펴보십시오. 만일 예전과는 달리 은근히 멋을 부리기 시작한다거나 외출이 잦아졌다면 이건 허투루 볼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최근에 그녀한테 애인이 생겼는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도박사들은 이런 예리한 관찰력을 무기로 상대의 표정을 현미경처럼 살펴 그 속내를 읽는 거죠. 아, 저 친구는 좋은 패를 잡으니까 왼쪽 콧구멍이 약간 벌어지는구나, 또는 오른쪽 눈썹이 미세하게 떨리는군,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독심술도 따지고 보면 이런 관찰력이 선행된다고 할 수 있죠. 점깨나 친다는 점쟁이는 다 이 같은 매서운 안력을 나름대로 휘둘러 으스대는 거랍니다.

결국 기업의 인수합병 문제가 그 본질은 포커 게임과 방불한 것이냐고요? 맞습니다. 이제야 뭔가 감이 좀 잡히시는 모양이군요. 말하자면 인수 합병에 참여한 내가 하는 일은 도박사로서의 관찰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상대편이 제시한 금액이 얼마만큼 허세이고 또 배짱을 부리는지, 그렇다면 이쪽에서는 베팅을 어느 정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겁니다.

# 어느 날 아르마니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사내가 유명한 도박사인 그를 찾아왔다. 사내가 내민 금박 테두리의 명함에는 ‘론스타 한국법인 법률고문’이란 글자가 선명했다. “인수가 이루어질 때까지 저희 법인의 임시임원으로 영입했으면 합니다. 보수는 넉넉히 드리겠습니다.”

그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한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분명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팀 일원으로 협상에 참가해 은행 측의 마음을 잘 읽어달라는 것! 이를테면 그의 임무는 예전에 모 재벌 그룹 회장이 사원을 뽑을 때 반드시 곁에 앉혀 두고 자문을 구했다는 관상사의 역할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 그럼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건에도 참여했느냐고요? 네, 그랬습니다. 아, 그렇다고 당시의 협상 내용, 요즘 한창 논란이 되어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만, 그 매각 조건에 대해서는 이야기해 달라고 하지 마십시오. 아주 곤란하니까요. 협상내용에 대해서는 절대 입을 열지 않기로 론스타 측과 약속을 했거든요.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론스타와 외환은행의 매각 협상은 프로와 아마추어 간의 포커 게임이나 다름없었다는 거죠. 외환은행 측은 베팅이 너무 서툴러서 저한테는 그 패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건 도대체 당시 외환은행은 무슨 사연이 있기에 그처럼 초조한 기색을 드러내며 빨리 승부를 지으려 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제가 한 말들이 정말 모두 사실이냐고요?

가만! 방금 이 물음은 결국 도박사가 한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는 받아들이기가 힘들다는 뜻인가요? 웃으시는군요. 그렇다면 좋습니다. 어디 한번 스스로 이 게임의 진위를 알아맞혀 보세요. 바로 이런 걸 밝혀내는 능력이 이를테면 진정한 관찰력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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