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호 소설가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내가 쌍방울집 늦둥이 외아들로 태어난 것이 나의 의지는 아니며 또 내 죄라고도 할 수 없으니까. 나미도 그 점은 이해하고 인정했다. 하지만 내가 가업을 계승할 뜻을 비치자 나미는 강력한 저항을 보였다.

“아니,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도 좋은데 왜 굳이 그런 식당을 맡으려고 해?”

그런 식당이라니! 나는 나미의 표현이 아주 귀에 거슬렸다. 사실 내가 편안하게 대학까지 졸업하고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그 모든 것은 부모님의 노고가 어린 ‘쌍방울집’이 존재한 덕분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식당이라니.

나는 기분이 나빴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대신 감정을 죽인 채 차근차근 내 결심을 설명했다.

이즈음의 대기업 사원이란 게 결코 장래성이 밝지만은 않다, 치열한 노력과 열성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직책과 자리․앞날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일찌감치 자기 사업을 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 집은 예전부터 그 방면으로 이름이 나 있고 지금도 여전히 장사가 잘 되고 있으므로, 내가 직장에 쏟고 있는 정열과 노력을 여기에 바친다면 그야말로 더 번창하는 식당사업으로 이어질 것이다, 전국적인 체인망을 만들 계획까지 구상 중에 있다, 하지만 내가 식당을 맡으려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제 쉴 나이가 되신 부모님 때문이다, 연로하신 양친께서는 내가 월급쟁이로 살아가기보다는 이미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가업을 계승하기를 은근히 바라고 계신다….

이 밖에도 몇 가지 더 이유를 대며 거짓 없는 설명을 했건만 나미는 요지부동이었다. 아니, 내가 계속 고집을 부리면 아예 결별마저 선언할 태세였다.

“요즘 대기업에 취직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멀쩡한 자리 박차고 나와 하필이면 그런 식당의….”
요지는 대기업 사원의 아내는 되어도 손님이 아무리 많고 또 유명하다고 한들 쌍방울집 안주인은 되고 싶지 않다는 게 나미의 확고한 의지였다.

#어젯밤에 나는 또 이런 꿈까지 꾸었다.

이번에는 나 혼자 아마존 탐험에 나섰다가 길을 잃고 헤매다 지쳐 쓰러져버렸다. 한참 뒤 정신이 돌아와 눈을 떠보니 수많은 벌거숭이 ‘아마조네스’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는 게 아닌가. 여전사들은 모두 나미와 얼굴이 닮았거나 아주 예뻤다. 놀람과 감탄,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다시 정신이 몽롱해질 즈음 아마조네스의 여왕이 나비 같은 몸짓으로 사뿐사뿐 내게 다가오더니 이렇게 속삭였다.

“당신은 포로가 아니라 우리의 귀한 손님이니 나를 비롯한 이 많은 전사들과 즐기며 평생 여기서 함께 살아도 좋아요.”

이게 현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즈음 나와 나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의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전에 없던 일이다. 이제껏 나는 나미와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모든 것을 그녀에게 일방적으로 양보해온 편이므로.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현재의 이 싸움에서만은 나도 정말 물러서고 싶지가 않다. 왜냐하면 이 일은 누가 뭐래도 나의 가장 근원적인 존재 문제로 여겨지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전쟁에서 내가 지게 되면 나와 우리 ‘쌍방울집’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그야말로 거시기 같은 꼴이 나는 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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