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구석기 이래 300만년 동안 이뤄진 조형예술품의 문양을 독자 개발한 ‘채색분석법’으로 해독한 세계 최초의 학자다. 고구려 옛 무덤 벽화를 해독하기 시작해 지금은 세계의 문화를 새롭게 밝혀나가고 있다. 남다른 관찰력과 통찰력을 통해 풀어내는 독창적인 조형언어의 세계를 천지일보가 단독 연재한다.

민화.궁중화의 모란은 모란이 아니고
영화(靈化)된 꽃 영화(靈花) 표현
꽃잎들도 영화세계 표현하는 방법

고려청자에 표현된 일체 모란은 모란이 아니라고 선언하면 모두가 당황할 것이다. 근대 문인화에서 모란을 그린 경우는 자연의 모란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 근현대의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모란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모란이 아니다.

고려청자뿐만 아니라 고려불화-조선불화-조선 궁중화-조선 청화백자-조선 건축-조선민화-민속품-복식 등에 폭 넓게 표현되어 있어서 모란이 아니라는 것을 결정적으로 충분히 증명해야 한다. 이미 거듭 강조해온 것처럼 조형예술품들에 문양으로서 표현한 작품들에는 현실에서 보는 것은 일체 없다.

앞서 고려청자 모란문 수막새를 분석하여 모란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지만 실은 고려 시대에는 모란문이라 부를만한 꽃조차 그리 없다. 그런데 모란문은 조선시대에 매우 많다. 특히 국립고궁박물관에 가면 조선시대 모란 병풍이 꽤 많이 남아있는데, 그 꽃을 보고 모란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부정하는 사람은 필자뿐일 것이다.

이미 궁중화를 연구하여온 교수들이 많은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 가운데 모란병풍을 다룬 논문들은 모두 모란으로 여기며 써왔기 때문에 반발이 있을 것이지만, 이제 더 이상의 오류의 축적을 막기 위하여 부득이 모란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갈 것이다.

필자는 민화를 연구하면서 민화에 표현된 모란은 모두 모란이 아니라는 것을 그 표현방법을 보고 알았다. 민화의 예는 매우 많으나 이 글에서는 생략하고 궁중 모란화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을 부정하며 올바른 꽃 이름을 밝히려는 필자의 여정은 10여년 간 매우 길고도 길다.
 

실제 모란꽃(도 1-1)과 실제 모란꽃의 씨방(도 1-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5.23
실제 모란꽃(도 1-1)과 실제 모란꽃의 씨방(도 1-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5.23

궁중화에서 보이는 모란꽃을 보면 우선 씨방을 자잘한 작은 점들이 피어오르는 모양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자연의 모란과는 크게 달라서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우선 자연의 모란꽃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즉 현실에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란꽃잎 모양과 큰 씨방을 관찰해 둬야 한다(도 1-1, 1-2).

그런데 모란병풍에서는 또 잎들의 끝을 뒤집어서 즉 번엽으로 표현하며 빨간색으로 칠하기도 했다. 그리고 기암괴석에서 위로 길게 무수한 활짝 핀 꽃들이 무서운 기세로 그려져 있다. 모란은 나무이지만 길게 뻗어 오르지 않는다. 우선 이런 꽃들이 모란이 아니고 나의 영기화생론에 의해 ‘영화(靈化)된 꽃, 영화(靈花)’라 부르기로 한다.

국립고궁박물관에는 모란 병풍들이 많은데 이것들은 어디에 쓰였던 것일까. 필자는 오래전부터 이런 모란은 모란이 아니리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증명할만한 자료들을 갖추지 못하여 주저해왔다. 이제 비로소 완벽히 밝힐 수 있는 작품들을 확보해 놓았기 때문에 펜을 들기로 했다. 만일 병풍에서 충분히 증명된다면 고려시대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의 모란 문제가 풀려질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국왕이 붕어하면 장례 절차가 엄격한 예식을 갖추어 진행되었는데, 시신을 모신 관을 임시로 봉안했던 장소와 능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머무는 곳마다 관의 주변에 반드시 모란병풍을 설치했다. 신주를 모시는 곳에서도 병풍을 둘렸으며 신주를 모실 때 교의 뒤에 오봉병을 두고 그 뒤에 모란병풍을 두었다.

장례의 처음부터 끝까지 시신이 머무는 장소마다 설치했다. 정조의 국장의 경우는 무려 모란병풍 19좌를 사용했다고 한다(「조선후가 국장용 모란병의 사용과 그 의미」, 『고궁문화』 창간호, 이종숙, 2007). 저자는 ‘국장에 사용된 모란병은 고인의 육신과 영혼이 머물러 계신 장소를 일상의 공간과 구분하고 그 공간을 조상신으로의 재탄생을 예비하는 신성하고 상서로운 공간으로 승화시키는 상징적 기능을 했던 의물로 판단된다(p. 87).’고 말했다.

여기까지 정답 가까이 이르렀으나 모란이라는 이름의 큰 장애물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즉 정조의 장례절차를 꼼꼼하게 다루면서 저자는 6개월에 걸쳐 관을 조금도 떠나지 않고 하관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한 몸인 듯 따라다니는 것이 모란 병풍인 것을 보고 그 병풍이 둘려진 곳을 일상과 다른 성스런 공간임을 느꼈다. 그러나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을 그려 넣은 화려한 병풍이 그런 엄숙한 분위기에 조금도 걸맞지 않는 점에 무척 당황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어느 누구도 모란이 아니라고 주장한 학자가 없었음에랴. 필자는 항상 정답은 작품 자체에 있다고 주장하며 기록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고 역설해 왔다.
 

모란 병풍에 그려진 갖가지 꽃 모양(도 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5.23
모란 병풍에 그려진 갖가지 꽃 모양(도 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5.23

궁중 기록이나 많은 교수들의 논문에서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모란이라고 부르고 있어서 모두가 그대로 따르지만 장례 절차에서 어울리지 않는 모란 병풍이라는 점조차 느끼지 않았단 말인가. 우선 모란 병풍에 그려진 모란의 표현방법을 살펴보고자 한다(도 2). 몇몇 활짝 핀 모란꽃과 피기 전의 봉오리와 모란꽃의 뒷면 등이 한 화폭에 모두 표현되어 있으므로 모란의 전모를 살펴볼 수 있다. 병풍을 한눈에 보면 시각적으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몇 가지를 취하여 그려보면 모란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알 수 있다.
 

영화(靈花)1(도 2-1), 보주의 무한 확산(도 2-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5.23
영화(靈花)1(도 2-1), 보주의 무한 확산(도 2-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5.23

먼저 위에서 본 꽃을 살펴보기로 한다(도 2-1). 꽃의 성격을 파악하려면 그려보아야 알 수 있다. 꽃잎을 붕긋붕긋하게 표한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는 고구려 벽화를 연구하면서 안 것인데 그 과정은 매우 길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다만 조형을 영화시키는 하나의 방법이란 것을 기억해 두자. 붕긋붕긋한 부분에는 모두 제1영기싹이나 보주가 내재하여 있다. 그러므로 자연의 모란꽃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꽃 중심에 작은 점들로 씨앗을 표현했는데 중앙의 것이 좀 커서 필자가 발견한 ‘보주의 무한 확산’을 가리킨다. 꽃잎은 물론 씨방의 표현도 실제 모란꽃과 전혀 다르다(도 2-2).
 

영화(靈花)2(도 3-1)와 도 3-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5.23
영화(靈花)2(도 3-1)와 도 3-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5.23

평생 그림이라곤 한 점도 안 그린 분들이 허다할 것이다. 특히 미술사학자들은 그림을 자주 그려야 한다. 그려 봐야 위에서 말한 조형적 특성을 굳게 체험할 수 있다. 그 다음 모란을 살펴보자(도 3-1). 앞의 꽃과 같은 윤곽선을 가지고 있으며 색만 다를 뿐이다. 모란병에서는 두 폭만 다를 뿐 나머지 폭에서는 두 폭을 반복하고 있다. 역시 중심에 작은 점들로 씨앗이 사방으로 피어오르는 듯 표현했다. 꽃잎들도 영화세계에서 흔히 표현하는 붕긋붕긋한 표현 방법이다(도 3-2).
 

영화(靈花)3(도 4-1)과 도 4-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5.23
영화(靈花)3(도 4-1)과 도 4-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5.23

다음은 아직 활짝 피지 않은 봉오리에서 막 피어나려는 상태의 꽃으로 받침이 세 갈래로 풍성하게 나타냈다(도 4-1). 이것도 그려보면 붕긋붕긋한 꽃잎에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꽃받침이다(도 4-2).
 

영화(靈花)4(도 5-1)와 도 5-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5.23
영화(靈花)4(도 5-1)와 도 5-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5.23

다음 역시 활짝 핀 모양이지만 앞서서 본 활짝 핀 꽃과 다른 모습이다(5-1). 붕긋붕긋한 꽃잎들이며 중심의 씨방은 붕긋한 형태로 자연에서는 볼 수 없는 조형이다. 거기에 긴 제1영기싹이 솟아오르고 있다. 그리고 작은 점들로 역시 씨앗들을 나타냈다(도 5-2).
 

영화(靈花)5(도 6-1)와 도 6-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5.23
영화(靈花)5(도 6-1)와 도 6-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5.23

위의 활짝 핀 꽃을 뒤에서 본 모양도 있다. 꽃받침이라 할 부분이 매우 크게 나타냈으되 역시 자연에서는 볼 수 없는 모양이다(도 6-1, 6-2). 이처럼 모란 병풍에 그려진 모란은 모란이 아니다. 조금도 닮은 점이 없다. 다만 잎들이 풍성하다는 인상 이외에는 비슷한 점이 하나도 없다.

조선 청화백자 영화문 제기,호림박물관 소장(도 7)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5.23
조선 청화백자 영화문 제기,호림박물관 소장(도 7)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5.23

이제 우리는 조선 청화백자에서 같은 속성을 지닌 영화靈花를 찾아볼 수 있다. 모란병풍에 보이는 특성을 더욱 강조하여 문양화했다. 갖가지 영화들에게 하나하나 이름을 붙일 수 없어 그저 포괄적으로 영화라고 부를 것이다. 조선 청화 백자들에는 엄청나게 많은 영화가 표현되어 있으나 모두 모란이라 부르고 있다(도 7).

얼마 전에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안녕 모란>전을 기획하여 모란과 관련된 그림-금속기-민속품-도자기 등을 전시한 적이 있다. 특히 조선 청화백자들에는 모두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영화들인데 모란이라고 부르니 안타깝다. 나는 앉아서 촬영하다가 벌떡 일어나 관람객들에게 “이 모든 꽃은 모란이 아닙니다”라고 소리쳤으나 아무도 응해주지 않았다. 그들은 설명판을 들여다보면서 “모란이라 써있네요”하고는 지나갔다.

조형예술품의 문양의 세계에서는 현실에서 보는 꽃은 하나도 없다. 이 낯선 갖가지 영화(靈花)들은 장인들의 창조물로 만물생성의 근원인 영화는 만물을 영기화생시킨다고 말할 수 있으므로, 모란병풍이 아닌 ‘영화 병풍’은 사자(死者)를 회생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어서 사자(死者)와 늘 함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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