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구석기 이래 300만년 동안 이뤄진 조형예술품의 문양을 독자 개발한 ‘채색분석법’으로 해독한 세계 최초의 학자다. 고구려 옛 무덤 벽화를 해독하기 시작해 지금은 세계의 문화를 새롭게 밝혀나가고 있다. 남다른 관찰력과 통찰력을 통해 풀어내는 독창적인 조형언어의 세계를 천지일보가 단독 연재한다. 

석관 내부 선각 영화 만병도(도 1-1).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6.13
석관 내부 선각 영화 만병도(도 1-1).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6.13

 

왕의 상장례 때 관을 두른 모란병풍은
모란꽃 아닌 강력한 힘 지닌 영화(靈花)
조형예술작품 속 모란, 모란 아닌 영화

왕의 신성(神性)을 파악하기 위해 국립고궁박물관에 자주 가서 전반적으로 조사하면서 모란 병풍들에 그려진 꽃이 모란이 아니란 것을, 민화에서 배워서 진즉 알고 있었다. 동시에 왕의 상장례에서 관을 항상 둘려서 설치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왕의 시신과 항상 함께 있었던 모란 병풍의 모란은 모란일 수 없다는 생각이 한시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모란꽃이 아니란 것을 더 확실히 증명해야 하지 않겠는가.

문득 고려시대의 석관이 떠올랐다. 고려시대 석관들이 국립중앙박물관뿐만 아니라 공사립박물관에 널리 소장되어 있다는 것도 알았다. 필자가 석관에 관심을 가졌던 까닭은 석관 네 벽에 사신도(四神圖)가 조각되어 있기 때문이다.
 

석관 내부 선각 영화 만병도(도 1-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6.13
석관 내부 선각 영화 만병도(도 1-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6.13

2010년 12월 13일에 문득 석관 내부를 보고 싶어서 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실에 전시된 석관의 뚜껑을 열고 내부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모란이 만병으로부터 솟구치고 있지 않은가(도 1-1). 채색분석해 보면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도 1-2). 그러니 ‘사곡(四曲) 병풍’이 시신을 둘려서 있는 셈이다.

만병을 흔히 꽃병이라 부르고 있으나 이미 그 당시 만병(滿甁)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더욱 놀랐다. 보주와 관련하여 만병을 연구하고 있는 학자는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바로 이 도자기 연재도 만병을 통해 보주에 이르고자 하는 계획으로 쓰고 있는지 독자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석관 내부의 영화 만병도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필자(도 1-3).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6.13
석관 내부의 영화 만병도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필자(도 1-3).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6.13

석관을 열어보며 그 당시 내부를 살펴보고 회심의 미소를 띤 필자의 얼굴을 22년 만에 보니 만감이 서린다(도 1-3).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화려한 모란을 왜 조각해 놓았는지 의문을 가지면 모란병풍들도 모두 모란병풍이 아니게 된다.

요즘 조선시대 괘불을 강의하며 주존 주변의 꽃들도 역시 모란이 아니며 주존을 영기화생시키는 강력한 힘을 지닌 영화(靈花)라는 개념을 정립할 수 있었다. 즉 영수(靈獸), 영조(靈鳥), 영화(靈花)라는 개념들을 완벽히 정립할 수 있었다. 그런 영화는 현실에서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형태도 갖가지여서 하나하나 명칭을 짓는 것은 무의미하다.

앞으로 ‘모란 모양 영화’라는 말도 쓰지 않으리라. 모란과 전혀 관련이 없으므로 혼란만 일어날 뿐이다. 조금만 복잡한 꽃모양이면 모두 모란이라 불렀고 무엇인지 모르면 모란이라고 부르기도 해왔다. 

삼성동 집근처에 있는 선정릉(宣靖陵)을 자주 찾았다. 경주에 살면서 쓴 첫 논문이 통일신라 왕릉에 대한 것이어서 고려시대 왕릉에 대한 이해도 빨랐고 그 전통을 이은 조산시대 왕릉이라 언젠가 한국 역사를 관통하는 왕릉의 병풍석과 문무인석 등 모든 석 조각들을 다루고 싶었다.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은 통일신라 왕릉의 독창적인 구조를 파악하면 그 이후 왕릉은 쉽게 풀릴 수 있다. 2020년 성종(成宗, 1457~1495)의 선릉에서 처음으로 문득 왕의 실체가 경이롭게 드러났다.
 

성종의 선릉에서 12방향으로 뻗어나온 장대석을 포착(도 2-1).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6.13
성종의 선릉에서 12방향으로 뻗어나온 장대석을 포착(도 2-1).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6.13

병풍석이 둘려 있으며 그 구조 윗부분에서 봉분으로부터 12개의 장대석이 사방으로 방사선처럼 돌출되어 있는데 능의 구조와는 기능적으로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하지만, 그 장대석 마구라마다 꽃이 새겨져 있는 것을 처음 포착한 순간 매우 놀랐다(도 2-1, 2-2). 그 꽃은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것으로 불화에서 여래를 화생시켰던 수많은 영화(靈花)라는 것을 순간적으로 알 수 있었다. 영화(靈花)는 보주를 상징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왕이 곧 보주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봉분 중심에는 왕의 관이 모셔져 있고 그 보주로부터 무량한 보주가 사방으로 발산하는 장엄한 광경을 이처럼 12개의 장대석으로 표현했음을 알고 매우 감격했다. 통일신라시대 이래 모든 왕릉의 병풍석에는 12지상이 표현되어 있으므로 이에 따라 모든 것이 12의 숫자에 의거하여 결정된다. 단지 12방향이 아니라 실은 온 방향으로 확산하여 이 세상에 가득 차 있음을 웅변한다. 영화가 조각된 장대석을 영화석(靈花石)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인석(引石)이라고 부르는 명칭에는 맞지 않다.
 

장대석의 마구리에 새긴 영화1, 영화2(도 2-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6.13
장대석의 마구리에 새긴 영화1, 영화2(도 2-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6.13

왕은 여래처럼 보주다. 그래서 왕의 모자인 면류관은 주렁주렁 보주들이 연이어 있는 모양이어서 여래의 보관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불화에서 보이는 보관은 모자가 아니다. 보주인 여래로부터 무량한 보주를 발산하고 있는 광경이다. 그래서 선릉(성종의 릉)의 봉분에서 사방으로 확산하는 보주들을 12개의 장대석 마구리에 각각 조각했던 것이다.
 

영화1을 채색분석한 것(도 2-3-1). 영화2를 채색분석한 것(도 2-3-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6.13
영화1을 채색분석한 것(도 2-3-1). 영화2를 채색분석한 것(도 2-3-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6.13

각기 다른 모양의 영화(靈花)들을 조각했는데 2개를 채색분석하여 보면, 각각의 중심에 보주가 있음을 알 수 있고 보주를 중심으로 꽃잎들이 나오고 다시금 잎이나 제3영기싹이 발산하는 형국이다(도 2-3-1, 2-3-2). 영화석은 능에 따라 달라서 3개가 다른 영화를 반복하거나 모두 같은 영화인 경우도 있다. 바로 옆에 있는 성종의 아들 중종의 능에 가보니 그곳 봉분에서도 12방향으로 영화를 새긴 장대석이 있었다. 그 다음 헌인릉을 찾았더니 마찬가지였다. 태릉도 그랬다.

그러나 정조대왕(1752~1800)이 붕어하자 6개월에 걸친 대규모 상장례가 치루어졌다고 하니 그의 능침은 얼마나 크게 장엄하였을까. 수원에 있는 윤건릉을 찾아가 정조대왕의 건릉을 대했을 때 경악했다. 병풍석이 없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대개 왕비의 능에 병풍석이 있거나 없거나 일정하지 않거늘 조선후기 문예부흥을 일으킨 정조대왕의 능에 병풍석이 없다니 청천벽력과 같은 믿을 수 없는 사건이다. 
 

융릉, 사도세자 릉의 병풍석의 영화 조각(도 3-1).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6.13
융릉, 사도세자 릉의 병풍석의 영화 조각(도 3-1).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6.13

같은 능역 내에 있는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찾아가 보고 또 경악했다. 병풍석의 12면에 십이지상 대신으로 영화(靈花)를 조각해 놓지 않았는가(도 3-1). 말하자면 정조대왕이 지휘했을 사도세자의 능침 조성에 12곡병 모란 병풍이 아니라 ‘영화 병풍’을 둘린 셈이다. 채색분석해 보면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다(도 3-2).

즉 왕이 붕어하면 하관할 때까지 항상 함께했던 이른 바 모란병풍은 이제 더 이상 모란 병풍이 아니라 영화 병풍이 끝까지 능침의 병풍석으로 둘려진 것은 큰 충격이었다. 나의 예상은 번번이 빗나갔다. 사도세자의 융릉의 병풍석에는 12면마다 중앙에 영화가 새겨져 있고 양쪽으로 작은 면에 역시 영화, 사람들이 연꽃이라고 부르는 영화가 새겨져 있다. 영화는 붕어한 왕을 부활시키는 영력이 강한 영화이며 강력한 보주를 상징한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병풍석의 영화 채색분석한 것(도 3-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6.13
병풍석의 영화 채색분석한 것(도 3-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6.13

아, 이제 모란 논쟁은 끝났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형예술품에 표현된 일체의 모란은 이제 모란이 아니다. 사도세자 건릉의 병풍석에 새겨진 두 가지 영화가 붕어한 왕을 부활시키고 있다. 모란을 닮아서 모란이라고 부르거나 연꽃과 같아서 연꽃이라고 부르는 그 모두가 영화라는 포괄적 개념에 포함시켜야 한다. 연꽃 또한 연꽃이 아니라면 모두가 항의할 것이다. 그러나 연꽃이 영화이자 보주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항의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마침내 모란 논쟁을 이것으로 끝내야 한다. 분연히 종지부를 찍고 앞으로 나아가자. 처음 듣는 분들은 대혼란을 느낄 것이나 갖가지 영화가 보주를 상징하고 있음을 알면 모든 것이 명료해질 것이다. 오류 속에서 계속 오류를 만들어낼 것인가 아니면 필자로부터 배워서 오류의 질곡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할 것인가. 이제 통일신라 왕릉을 비롯하여 50년에 걸친 한국 역사를 관통하는 왕릉 연구도 마무리 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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