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제 인천언론인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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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락과 길가를 지날 때 아카시아와 라일락 향기가 솔솔 피어난다. 20대 대학 캠퍼스에서 맡았던 청춘의 냄새다. 이번 지방의원과 기초자치단체장 후보로 MZ세대 진출이 눈에 띌 만큼 많아져 세대교체 바람이 조용히 불고 있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듯이, 새사람이 옛사람을 대신한다’는 게 세상 이치 같다. 그렇지만 몸집이 큰 행정수장인 시장과 도지사는 구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장의 경우 유력 후보들이 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4대 정책이나 유엔본부 유치 등을 통한 국제도시 도약을 제1호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정책 대결보다 상대방 흠집 내기에 더 열중하는 모습이다. ‘실패한 시장’ ‘상상력 빈곤’과 같은 언어로 상호 자극하고 있다. 인천시장 후보들도 2025년 수도권매립지 사용 중단 실현 여부를 놓고 서로에게 거짓말, 무능의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경기지사 후보는 첫 TV토론에서 “말꾼이 아니고 일꾼이 필요하다” “힘 있는 집권 여당의 지사가 정답”이라며 설전을 벌였다.

대선 후보들이 수도권 일극체제 극복을 내걸었던 이유는 국가 균형개발과 시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였다. 지방선거에 나선 수도권 후보들에게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철학과 비전을 찾아보기 어렵다.

도시에서 각박하게 살아가는 시민들이 가장 희구하는 게 무엇일까. 총체적이고 복합적인 요소들이 조화롭게 충족돼야 하겠지만 결국 여유로운 삶으로 수렴될 것이다. 한국은 유엔으로부터 선진국 지위로 인정받았을 정도의 경제력을 갖췄음에도 자살률, 출산율, 빈곤율 등 각종 사회지표에서 국민 행복감이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와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국가별 행복지수 조사에서 항시 10위권에 속한다. 복지 천국인 스웨덴 국민들은 라곰(Lagom‧편안하고 아늑한 상태)과 피카(Fika‧커피를 마시고 시나몬빵을 먹으면서 친구나 동료들과 이야기 나눔)를 일상에서 누리고 있다. 여유와 평온한 생활이 친밀감과 공동체 의식을 높여주기에 세계에서 최고 행복한 나라가 된 것이다. 

해외 창의적인 도시들의 공통점을 찾자면 어메니티, 즉 도시 생활의 쾌적함과 편안함을 꼽을 수 있다. 주거복지 실현, 기초생활 인프라 확충, 노후 주거지 정비, 도시 활력 회복, 혁신거점지구 조성 등 도시에서 해결할 일이 산적해 우선순위를 정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도시경쟁력, 사회통합, 일자리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수많은 정책과 공약을 제시하더라도 시민들이 여유롭게 문화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삶의 질 향상과 맥락이 닿지 않으면 별 소용이 없다.

시민들에게 소소한 행복감을 선사할 수 있는 일은 중앙보다 지방정부가 더 잘 할 수 있다. 제주도 올레길의 벤치마킹 대상이었던 스페인 콤포스텔라 성지 순례길의 종착지인 폰테베드라가 대표적이다. 보행자 중심의 도시 건설을 뚝심 있게 추진한 선출직 행정가 덕분에 혼잡하기 그지없던 도심이 180도 달라졌다.

의사 출신의 미구일 엔소 로레스는 1999년 시장으로 당선되자마자 3년간 도심 내 차량을 통제하고 외곽 주차공간을 늘리는 일부터 시작했다. 차 없는 도시를 만드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공약을 실천하자 도심 상인을 중심으로 거세게 반발했으나 실현 가능한 정책을 쏟아냈다. 6선을 거듭하며 도심 도로를 전부 인도로 바꾸는 작업을 착실히 추진하고 외곽에 무료 주차장을 확대해나갔다. 이제 도심에 차가 다니지 않고 대기 오염과 자동차 소음이 엄청나게 줄어 UN으로부터 ‘보다 나은 인류의 미래도시’라는 칭호를 받게 됐다.

우리도 이런 자치단체장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조한 멸사봉공(滅私奉公),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실천하는 ‘섬기는 공복’이라면 시민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표심을 의식한 개발 공약을 나열하기만 하지 말고 일상을 편안하게 해 줄 도시를 만드는 단 하나의 정책이라도 무소의 뿔처럼 꿋꿋이 실천할 수 있는 후보가 누구인지 잘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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