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제 인천언론인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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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문화정책 풍향계가 어디로 흐를지 관심이 높다. 지난 정부 때 블랙리스트 파문과 미투 사건이 불거지면서 혼돈에 빠졌던 문화계인지라 윤석열 2.0 문화도시 논의,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 등을 살피며 눈치를 보고 있다.

윤 정부의 문화 분야 국정과제가 ‘문화 공영으로 행복한 국민, 품격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로 정해졌다. 일상이 풍요로워지는 보편적 문화복지 실현, 공정하고 사각지대 없는 예술인 지원체계 확립, 전통문화유산을 미래 문화자산으로 보존 및 가치 제고 등 7개 항을 약속했다. ‘세계 문화대통령’으로 불리는 BTS로 인해 한국 문화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더욱 높아지고, 4차산업혁명이 가속화되는 시대상을 반영해 K-컬처 초격차 산업화와 국민과 동행하는 디지털미디어 세상 구현도 문화 국정과제로 설정됐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도 K-컬처, 디지털 산업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건 후보들이 꽤 많다. 변방의 낯선 음악이었던 케이팝(K-POP)이 세계적 아이콘으로 성장했고, 팬데믹 상황에서 ‘오징어게임’ ‘지옥’ 등의 K-드라마가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2002년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이후 ‘대장금’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 ‘도깨비’ ‘사랑의 불시착’ 등이 K-드라마 흥행을 이어왔다. 아시아에서 시작된 한류가 북미, 남미, 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추세를 보고 문화를 경제나 관광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모습은 우려스럽다.

새 문화정책의 핵심인 ‘문화 공영’이 문재인 정부 때 ‘예술, 사람, 문화가 있는 삶’으로 대표되는 새 예술정책이나 박근혜 정부 때 ‘문화융성’과 얼마나 차별성을 보일지 아직 가늠하기 힘들다. 대통령 주변에서 문화정책을 주도할 전문가를 꼽기 힘든 상황이어서 문화 담론이 형성될 만큼의 특징을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지역문화재단을 이끄는 관계자들과 식사를 하면서 문화도시 이야기를 나눴다. 국고 지원이 이뤄지는 법정 문화도시로 지정받기 위해 각 지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윤 정부에서 선정 기준이나 방식이 바뀔 공산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문화도시, 창조도시, 생태도시를 만들어보려는 실천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는데도 문화예술진흥, 생활문화, 문화복지, 문화예술교육을 아우르는 문화정책이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도시환경을 문화적으로 변화시켜보려는 의도로 문화도시 조성이 추진되고 있으나 시민 중심이기보다 옛 새마을운동 방식처럼 관료적 습성이 강하게 남아있다. 지역의 경제, 문화, 사회가 상호작동하면서 개인과 일상에 변화를 줘야 하는데 문화도시 선정 심사 기준을 맞추려는 전문가가 문화권력자로 행세하거나 예비사업에 헛돈을 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역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전략이 필요하고, 모든 지역에서 일률적으로 사업을 벌일 수 없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은 문화도시를 유권자들에게 표를 얻는 방편으로 보기도 한다. 지역 특징을 잘 살려 문화적으로 도시를 활성화하려는 관점이 중요한데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시민을 중심으로 공간과 장소를 재발견하고 유‧무형의 도시자원 가치도 높이는 실천과 경험의 과정이 문화도시 사업이다. 문화적 환경을 만들어 시민 소통이 원활해지면 각박한 도시의 일상 삶이 훨씬 여유롭고 쾌적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신이 사는 동네에 더욱 애착을 갖고 계속 머무를 수 있지 않을까. 도시 내에서의 분리와 불균형 현상을 완화하고, 위계적 질서를 평평한 질서로 재편하는 효과도 나타날 수 있다. 인간적 연대, 지역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문화도시가 많이 생겨날 수 있는 문화정책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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