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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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언론 보도와 유튜브 등을 보면 마치 우리에게 러시아는 적국이고 우크라이나는 우방인 것 같다. 모든 전쟁이 그러했듯이 이번 전쟁도 그 배경이 간단하지 않다. 러시아의 무력행사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으나 러시아의 행동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물론 먼저 주먹을 휘두른 자가 가장 비난을 받아야겠으나 사태를 부추기고 이를 즐기며 이익을 챙기는 자가 있다면 그도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후자의 말에 현혹돼 행동하는 자는 언젠가는 웃음거리가 될지 모른다. 인도주의 차원에서 우크라이나를 동정하고 도와주려는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냉혹한 국제사회의 현상을 선악 이분법으로만 보는 시각은 위험하며 우리의 인식이 거기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강대국들은 ‘가치’를 앞세우나 그것은 종종 자신들의 이익 추구를 합리화하는 포장일 뿐이다.

국내 매체는 대부분 서방 언론의 러시아 매도와 푸틴의 악마화 놀음에 줏대 없이 장단을 맞추고 있다. 역사상 민간인 피해가 없거나 민간인 중 어른들만 희생되는 전쟁이 있었던가? 한국 사회는 몇 년 전 중동 시리아 난민 사태에 대해서는 그리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서방 언론이 상세 보도를 하지 않아서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 아닐까? 미국과 영국 언론이 민간인 피해를 부각하고 전황에 대해 추측성 보도를 쏟아내는 데는 대대적인 러시아 때리기를 통한 러시아의 고립과 약화라는 전략적 의도가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과 영국 지도자들은 입만 열만 인권과 인도주의를 외치고 있는데 정작 우크라이나 난민 중 두 나라로 가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자 발급에 대해서는 인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전쟁에 있어 수혜자는 미국이다. 러시아의 군사행동으로 미국의 유럽 내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있고, 러시아에 대한 경계심이 커진 유럽국가들은 앞다퉈 고가의 미국 무기를 주문하고 있으며,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제한해 미국산 셰일가스 수출이 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과 대화해 우크라이나 사태가 하루바삐 종식되도록 노력하기는커녕 자신의 매우 저조한 지지율을 올리려는 계산인지 푸틴 대통령에 대한 거친 언사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혹시 전쟁이 길어지길 바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전세가 바뀔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데도 계속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 이로 인해 역설적으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고통은 연장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반응을 살펴보면 신문과 방송의 평론은 러시아 매도 및 우크라이나와 연대 주장뿐이다.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한 기부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언론사들까지 모금에 나서고 있고 일부에서는 한국도 우크라이나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전쟁 때 우크라이나가 우리를 도와줬다는 어처구니없는 역사 지식을 갖고 의용군에 동참하겠다고 우크라이나로 달려간 유튜버도 있고, 주한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반전 평화 시위도 열린다. 심지어 모 정신과 의사는 서방에서 그런 주장이 있어서 그런지 국제관계에는 전혀 문외한이고 푸틴을 만나본 적도 없을 텐데 덩달아 푸틴에 대한 정신감정에 나섰다. 일본은 러시아와 역사적으로 구원이 있고, 현재 러시아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쿠릴열도를 둘러싸고 갈등이 있어서 친 우크라이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이 이해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우크라이나를 돕겠다고 발 벗고 나선 사람들은 우크라이나에서는 지도상에 한국 영토인 독도를 일본령 다케시마로 표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은 이번 전쟁의 당사자가 아니며, 간접적인 당사자인 미국의 동맹국일 뿐이다. 미국의 동맹으로서 어느 정도 성의를 보이면 족한 것 아닐까?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르면 동맹은 한반도를 포함한 태평양지역에 국한된다. 대러시아 제재에 쿼드 회원국인 인도는 미국의 요청을 거절했으며 나토 회원국 터키와 미국의 맹방인 이스라엘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은 미국의 제재 동참 요구를 그대로 수용했고 러시아는 한국을 비우호국 명단에 올렸다. 러시아에는 이번 사태로 인해 오도 가도 못 하는 우리 교민과 기업이 있다. 조만간 러시아는 비우호국 국민에 대해 입국 제한 조치를 취한다고 한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독립 이후 한국 대통령이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나라이다. 그런데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29일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지원을 약속했으며, 국회 외통위는 오는 11일 젤렌스키 대통령의 화상연설을 추진한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동정론이 지나쳐 그간 어렵게 일궈 온 한러 관계가 훼손될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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