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맹기 서강대 언론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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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의 ‘기자 사찰 의혹’은 ‘의혹’을 넘어,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공수처는 말 그대로 고위공직자 사정 기관으로 전문성을 요하고, 엄격할 필요가 있게 된다. 그러나 절제가 전혀 없다. 신문은 민간 기업이고, 고위 공직자와 관계가 없다. 언론은 정부 밖에서, 정부를 감시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해준다. 헌법정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만민공화(萬民共和) 정신 하에서 언론인 개개인은 ‘표현의 자유’를 누린다. 언론은 정부가 할 수 없는 부분에서 국민의 삶을 보호하고,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한다. 그렇다면 공수처의 언론인 사찰은 민간인 사찰을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헌법 제18조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한다. 물론 전기통신사업법에 통신을 규제할 근거는 있다. 즉,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되는 사람이 범죄 행위를 했을 것으로 의심되는 기간이나 증거인멸 시도가 있었을 것으로 의심되는 기간에 누구와 통화했는지 통화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라는 규정이 있지만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절제 있게 시행돼야 한다.

문재인 청와대는 행정처리 스타일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집단과 유사한 점이 빈번하다. 즉, 집단주의체제에 많이 경도된 것이다. 사회학 용어로 잘 쓰는 신분의 유형을 업적성 직위(achieved status)와 귀속성 지위(ascribed status)로 나눈다. 전자는 자신의 역할을 최적화 시키는 노력이다. 그는 열심히 노력을 대가로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사회적 기대도 충족시키고, 자유도 만끽하고, 그 역할 기대로 개인의 가치에 부합시킨다.

헌법 전문은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라고 규정했다.

헌법의 규정한 것 외에도 자유주의 사고의 문화가 있다. 조선일보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12월 23일)는 ‘보이지 않는 헌법 투표로 지켜야 한다’라는 칼럼에서 “헌법 밑바탕에 ‘보이지 않는 헌법’이 있다. ‘보이지 않는 헌법’이 없다면, 헌법이란 그저 종이에 적힌 죽은 텍스트일 뿐이다. 저명한 헌법학자 트라이브(Laurence Tribe)가 말하듯 헌법이란 ‘보이지 않는 헌법’의 바다에 떠있는 작은 배와 같다… ‘보이지 않는 헌법’이란 한 사회의 역사적 경험, 정치적 지혜, 축적된 판례, 시민사회의 감시, 매스컴의 비판, 전문가 집단의 자문, 공동체의 윤리 의식, 개개인의 도덕적 판단력 등 법치가 꽃필 수 있는 한 나라의 문화적, 전통적, 정치적, 이념적 토양이다”라고 했다.

필자가 보기에는 ‘민주공화주의’의 원리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근거로 한다. ‘귀속성 지위’가 주류가 될 수 없다. 개인은 노동을 하게 함으로써 노동이 곧 재산권을 형성할 수 있는 문화이다. 그렇다면 권력을 주는 쪽에서 받은 신분, 재산 등은 결코 헌법의 중핵이 될 수 없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그리고 전통사회에서 갖는 ‘귀속성 지위’는 정당성이 약하다.

이런 헌법정신의 사회는 행위자의 만족이 중요하다. 개인의 행복이 가족이나 공동체, 국가보다 우선이다. 개인은 사회 내에서 성취한 역할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한다. 그게 역할의 기대이다.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것은 곧 사회윤리를 완성시킬 수 있고, 그때 공동체는 자연 복원이 된다. 구체적이고, 전문화된 역할 개념은 공동체를 굳건하게 한다.

이 체제에서 개인의 동기가 으뜸이다. 사회주의, 공산주의에서 금지된 개인의 이익을 자유주의사회에서는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그 행위를 허용한다. 그게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다.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 ‘역할 기대의 일반적 기준(universalistic standards of role expectation)’이 적용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공업고등학교(工高)를 만들어 세계 산업의 공급망(網)에 참여하도록 했다. 이 정신은 헌법 전문에 “…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라고 규정했다.

자유주의 체제에서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정치는 그 자유를 조정하고, 사회 통합은 법이 한다. 그 조건으로 검사의 조사와 판사의 판결은 공정성, 객관성을 필요로 한다. 이념과 코드가 아닌, 실증주의 측면에서 조사를 한다. 귀속성 지위에서 얻는 신분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리고 그 헌법정신의 문화는 학습되고, 다른 국민과 나누게 된다.

이는 개인의 이해를 곧 집단의 이해로 보는 관점이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이익을 막아놓고, 사회의 이익을 앞세운다. 그런 법을 여기저기 만들어놓고, 그게 ‘우리민족끼리’ 통일이라고 한다. 공수처 설립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라고 말하면, 헌법의 기본 골격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즉,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정신은 물론 국민 상식, 인문 교양, 집단 지성 등 어디에서도 환영받을 수 없다.

공수처 설립이 처음부터 꼴이 우스웠다. 문재인 청와대의 난맥상이 공수처 설치에서 가감 없이 노출됐다. 공수처 설치의 패스트트랙 과정을 보자. 패스트트랙에 놀란 문희상 국회의장은 2019년 4월 25일 18시 50분 1987년 이후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국회 경호권’을 발동했다. 그리고 공수처가 귀속성 지위를 강화하도록 설치됐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 문화가 출현한 것이다. 이들의 실천은 법조의 사회통합정신을 망각한 꼴이 됐다. 조선일보 김창균 논설주간(12월 16일)은 ‘文의 분신 공수처, 무능·위선·파렴치도 빼닮았다’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2012년 첫 출마 때부터 검찰 개혁이 대표 공약이었고, 그 제도적 완성이 공수처였다. 집권 3년 차인 2019년 3월 버닝썬, 김학의, 장자연 사건이 한꺼번에 불거졌을 때 문 대통령은 ‘특권층 불법행위에 대한 부실 수사와 외압을 뿌리 뽑으려면 공수처가 해답’이라고 했다… 여당이 군소 정당들과 손잡고 공수처법을 강행 처리하자 조국 전 법무장관은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기쁘다’고 했다.… 출범 두 달 만에 대통령 대학 후배인 서울 지검장을 공수처장 관용차로 모셔와 조사했다. 언론 취재를 피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였다. 첫걸음부터 권력에 친절한 공수처였다.… 정권이 바뀐 뒤에도 함량 미달 수사 인력 93명이 연간 200억 예산을 쓰면서 저질 코미디 속편을 써나갈 것이다.”

공수처는 ‘기자 사찰’을 넘어서 헌법 유린까지 간다. ‘민변 사무차장 출신인 김모 변호사가 공수처가 통신 자료를 조회해 주소, 주민등록번호 등 자신의 개인 정보를 넘겨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이를 SNS에 올렸다.’ 이후 참여연대 출신 김경율 회계사에 이어 기자들도 통신사에 확인 요청을 했다.

그것뿐 아니다. ‘공수처는 13개 언론사 최소 41명 통신자료… 법조팀 아닌 야당 출입 기자들까지’ 그리고 중앙일보는 ‘외교 담당 기자 폰, 주민번호까지 탈탈 털었다’고 한다. 기자가 고위공직자도 아니고…. 이에 대해 국민 여론이 따갑다.

뉴시스 홍효식 기자(12월 17일)의 “공수처 평가, 부정 74.8% vs 긍정 18.1%… 野 ‘폐지·개혁 논의할 것’”에서는 “세부적으로 ‘매우 잘 못하고 있다’는 48.0%, ‘대체로 잘 못하고 있다’는 26.8%다. 긍정 평가 중 ‘매우 잘하고 있다’는 5.0%, ‘대체로 잘하고 있다’는 13.1%로 나타났다. 지역적으로 봤을 때 대구·경북(98명)의 경우 부정 평가가 75.8%, 긍정 평가가 16.7%로 확인됐다. 광주·전라(98명)는 부정 평가가 70.4%, 긍정 평가가 21.3%로 나타났다”라고 했다. 절제 없는 공수처가 ‘기자 사찰’을 넘어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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