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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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 고교 동창이 친구 자녀 결혼식장에 독일제 고급 승용차 벤츠를 새로 구입했다며 끌고 왔다. 그는 “몇달 전 일본 고급 승용차 렉서스를 샀는데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이를 팔고 다시 독일차 벤츠를 샀다”며 ‘새 차를 중고차로 팔아 수천만원 손해를 봤지만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는 의미로 일제상품 불매에 동참하니 별로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시 2년 전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뒤 한일 간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사항을 파기하고 대법원이 기존의 강제 징용 관련 판결을 뒤집는 선고가 나오면서 양국 간 관계가 극히 나빴다. 일본이 한국의 결정에 반발하며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에서 필요한 반도체 원자재 수출을 규제하면서 한일 무역 분쟁이 심화되고 있었던 터였다.

많은 국내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는 ‘NO, BOYCOTT JAPAN’이라는 로고가 등장하며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범국민적인 차원으로 퍼져 나갔다. 평소 시민운동에 큰 관심을 보인 고교 동창은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부응해 일제 불매 운동을 몸으로 보여줬던 것이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큰 돈을 손해보면서까지 일본에 대해 적개심을 보인 그의 행동을 놓고 찬반 논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한일 무역 분쟁만큼 명쾌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지난 2년간 잠잠해졌다 싶었던 일제상품 불매운동이 최근 뒤늦게 골프업계에서 일어날 조짐이어서 주목을 끈다. 전북 김제의 한 골프장이 내년부터 모든 일제 차량의 출입을 막기로 하면서 일제상품 불매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나선 것이다. 이 골프장은 내년부터 모든 일제 차량의 출입을 막기로 했다. 국내 골프장에서 일제 차량의 출입을 전면 제한하기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제 아네스빌골프장은 지난 1일 인터넷 홈페이지에 ‘일본산 차량 출입 금지 실시 공지’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내년 1월 1일부터 모든 일제 차량의 골프장 출입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이어 “일제의 핍박 속에서 나라를 지켜내고 후손들에게 자유를 물려주신 조상들의 공로를 잊지 말자는 취지이며, 역사를 왜곡하고 우리 국민에게 제대로 된 사과도 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개인기업의 의지”라고 이유를 설명했다.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골퍼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마치 2년 전 고교 친구들간에 벌어진 논란처럼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는 모양이다. “늦게라도 일본상품 불매 운동에 나선 것은 용기 있는 일”이라는 의견이 있지만 “이용객의 불편이 클 것”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아네스빌골프장 측의 이 같은 방침은 ‘국뽕’ 논리에 젖은 과도한 민족주의 감정에 근거를 둔 ‘피해자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객인 골프장 내장객들의 이용은 한일 간 갈등과 사실 아무런 관계가 없다. 비록 일제차를 몰고 골프장을 이용한다고 해서 입장 자체를 거절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시장 질서를 깨뜨리는 행위다. 그 자체가 반시장적일 수밖에 없다.

겉으로 내장객들의 일본제 차량 통행을 금지한다고 해서 일본에 대한 자존감과 경쟁력이 강화되는 것은 아니다. 비록 개인기업인 한 골프장의 반일 운동 캠페인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국가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논란이 된 골프장은 반일운동 캠페인을 놓고도 정치적으로 갈라지는 우리 사회 국론 분열의 현 상황을 고려해 좀 더 품격있는 운영을 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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