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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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90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빈소는 적막감이 감돌듯 한산하다. 가족장으로 치러지는 빈소에는 대부분 5공 정부 인사 조문객들만이 찾을 뿐 현직 정치권 인사들의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 야당인 국민의 힘 전현직 국회의원 몇몇이 방문할 뿐 여당인 더불어 민주당과 현 정부 인사들은 찾아 볼 수가 없다.

현재 정치권 인사들이 조문을 꺼려하는 것은 다가올 대선에 전두환 전 대통령 조문이 민감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군 인사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현역 장성들은 거의 조문하는 것을 볼 수가 없다. 예전 전두환 정부 시절의 장군 등 군 관계자들이 문상을 할 뿐이다.

언론들도 전 전 대통령 별세에 대해 ‘5.18 사과 없이 사망’, “‘5월 아픔’ 뒤로 한 채…” 등의 제목을 달고 ‘공(功)’보다 ‘과(過)’가 많다는 보도를 냈다. 그가 굴곡 많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 복판에 섰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군 조직 ‘하나회’를 결성한 뒤 1979년 12.12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했고, 광주 5.18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유혈 진압했으며 대통령으로 집권한 뒤에는 철권통치로 민주화를 막았다는 평가였다.

하지만 역사 평가에는 빛과 그림자가 항상 있게 마련이다. 그라고 마냥 ‘악’으로만 채색된 지도자는 결코 아니다. 집권 동안 경제는 호황을 이뤄 본격적인 중상층 시대를 열게 했다. 가장 눈에 띈 업적을 보인 것은 스포츠였다. 그는 재임 중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하면서 국가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야구, 축구, 씨름 등 프로스포츠를 출범시키면서 국민들에게 스포츠가 있는 삶을 이끌며 개방적인 분위기를 불어넣었다.

전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스포츠를 사랑한 지도자로 유명하다. 육사 생도시절 축구부 골키퍼로 뛰기도 했던 그는 군인 시절에도 축구, 복싱 등을 좋아했다.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열리면 스포츠인들과 공감을 나누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야구장에서 시구를 하고, 축구장에서 시축을 하는 대통령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특히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 선수들과 기쁨을 함께 나눴다. 1983년 6월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한국청소년축구팀이 4강 신화를 달성하자 전두환 전 대통령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청소년축구팀은 개선 직후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였으며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를 방문하기도 했다. 1985년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예선에서 김정남 감독의 축구국가대표팀이 1954년 스위스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낸 것을 누구보다도 기뻐했다.

전 전 대통령 시절 정부의 적극적인 체육육성정책과 복지혜택 등으로 체육인들은 삶의 여건이 한층 좋아졌다. 기업들의 스포츠에 대한 투자가 많아지면서 일자리가 크게 늘어났다. 체육인들 사이에선 아직도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 체육에서만큼은 최고 전성기이자 호황기였다”고 말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전두환 정부에서 특별대우를 누렸던 체육인들은 많았다. 하지만 막강한 권력을 내려놓고 수십년이 지나 고인이 된 전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는 체육인들의 발길은 뜸하다. 진보와 보수, 종교와 이념의 차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체육인들인 만큼 그의 재임 시 한국체육에 기여한 업적을 인정한다면 조문을 하는 것은 그리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위의 눈치를 보고 비판을 받을 것을 우려해 조문을 꺼리는 것이라면 페어플레이를 가치로 삼는 체육인들의 자세가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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