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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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청과 조폭들의 커넥션 택지개발 부패상을 그린 한국영화 ‘아수라’가 요즈음 와서 부활했다. 성남시 대장동 사건을 빗댄 영화라서 관심이 증폭되는 것 같다.

배우 황정민이 연기한 가공의 안남시 시장역은 이익을 위해서는 온갖 수단도 불사하는 앞과 뒤가 다른 인물로 그려진다. ‘부패한 권력과 삐뚤어진 정의는 그저 지옥이다’라고 이 영화는 답했다.

‘아수라’란 불가에서 저승 혹은 지옥을 지칭하는 말이다. 본래 종족의 이름으로 전쟁이 끊이지 않는 혼란의 세계라는 뜻이었다. 극도의 혼란상을 ‘아수라장’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비롯된 말이다.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은 암흑천지로 진흙을 먹고 사는 ‘아랄루’를 지옥으로 생각했다. 즉 아랄루가 아수라가 됐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우리 민담 속에 등장하는 효녀 바리공주는 부친의 약을 구하기 위해 저승인 아수라로 간다. 공주는 마침내 공덕을 쌓은 끝에 무장승의 아이들을 낳기도 한다. 그리고 지옥의 꽃이 부모를 살릴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된다.

바리공주는 꽃을 가지고 가족을 데리고 저승에서 나온다. 그리고 부모를 모두 되살려 만신(萬神)이 되는 것이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이 효심 설화는 심청이 인당수에 빠져 용왕의 도움으로 살게 되고 황후가 되는 설정과 비슷하다.

불가에서는 아수라를 잡는 신을 제석천(帝釋天)이라고 했다. 큰 사찰 중문을 지나면 여러 무서운 신이 서있는데 그중 하나가 제석천 즉 호법신이다. 한자표기로는 교시가(憍尸迦)라고 하며 대반야바라밀다경 권540은 부처와 제석천의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제석천 발아래 깔려 있는 악귀가 있다. 바로 아수라인데 고통스런 얼굴로 발버둥치는 모습이다.

제석천은 전쟁의 신이다. 수미산(須彌山)의 꼭대기인 도리천(忉利天)의 왕으로 나쁜 무리들을 물리친다. 고대 왕도 안에는 궁 가까이 제석사(帝釋寺)를 세웠는데 바로 제석천의 위엄으로 왕실을 지키려는 데서 나온 것이다.

제석천은 석가의 장엄을 그린 변상도에서도 갑옷에 투구를 쓴 모습으로도 등장하기도 한다. 또 장수의 모습으로 큰 칼이나 창을 들고 있다. 자비로운 부처도 악의 무리를 물리치는 데는 제석천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인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대통령을 뽑는 경쟁이 아수라장이 된 것은 불행한 일이다. 온갖 음모, 거짓 선동, 후보 폄하가 난무해 국민들이 혼란스럽다.

올바른 인물을 선택해야 할 국민의 눈에는 찍을 후보가 없다는 탄식이 흘러나온다. 여야 모두 후보들에 대한 과도한 흠집 내기가 극에 달한 느낌이다.

물고 물리는 이전투구에 국민들의 비호감이 커지고 있다. 서로가 공경하고 존중할 줄 모르며 서로 범죄자라고 삿대질을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곧 교도소에 들어갈 후보라고 몰아세운다. 작은 잘못이라도 발견 되면 언론도 편승해 깎아내리는 데 온갖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처럼 금도를 상실한 대선 후보경쟁은 대한민국 정치사에 유례가 없었다. 대선 후에도 국론이 갈라져 후유증은 클 것이다. 여든 야든 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석가는 제석천에게 무엇을 가르쳤을까. ‘청정한 법의 눈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라. 평등한 깨달음을 알라. 공경하며 존중하고 뛰어난 지혜를 살펴라’ 아수라장이 된 대선현장에서 여야 후보들이 한번 곰곰이 씹어볼 가르침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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