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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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전 MBC에서 41부작으로 방영된 드라마 ‘제5공화국’이 방송 매체에서 재방영되고 있다. 전체 줄거리는 1979년 발생된 10.26 사건부터 12.12 및 5.17 군사 쿠데타,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 항쟁 등 제6공화국이 성립되기 전까지 군부의 정치비사 등을 다룬 내용이다. 드라마 공화국 시리즈가 있었지만 유독 제5공화국 드라마에 시청자들의 관심이 많았던 것은 한국 역사상 신군부 독재로 인해 민주주의의 후퇴와 국민들의 인권유린이 심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사회에서는 제5공화국 시절 이뤄진 인권유린과 언론통폐합 등으로 인한 불법행위에 자유민주주의가 후퇴됐고, 그에 따른 후유증을 치유 중이라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며칠 전에 재방영된 26회분은 언론통․폐합에 관한 내용들이다. 드라마 속에서는 당시 군사 쿠데타를 통해 통치 전권을 장악한 후 최고 권력자가 된 전두환 대통령이 허문도 청와대 공보비서관의 건의를 받아 전격적으로 언론을 통․폐합한 것인데, 당시 언론인들은 “군바리들이 방송에 대해 뭘 아느냐”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군사 독재정권에서는 언론계의 30%가 저항세력이라며 계엄이 해제되면 골치가 아프니 “놈(언론인을 지칭)들이 펜대를 굴리기 전에 아예 펜대를 꺾어놔야 한다”는 것이고, 이와 같은 언론 통․폐합의 실질적 목적은 전두환 대통령을 정점으로 해 군사정권이 완벽하게 정권을 장악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당시 언론 통․폐합의 선봉장은 조선일보 기자 출신인 허문도 청와대 공보비서관이었다. 허 비서관은 전 대통령을 독대할 때마다 달콤한 이야기를 한즉, “언론만 잘 조정하면 각하는 이 나라의 현군이자 성군이 되신다. 박정희 대통령을 국민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친정권 언론의 공세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고무된 전 대통령은 특유의 멘트 “좋아, 아주 좋아”를 연발하면서 “날 훌륭한 통치자로 한번 만들어 봐”라고 말하면서 허 비서관의 안을 받아들였고, 결국 보안사령부 언론반을 설치해 1980년 11월 14일과 15일 단 이틀 만에 통폐합을 완료하게 된다.

드라마에서도 통폐합된 언론사 숫자가 잘 나타나지만 실제 언론통․폐합을 한 결과 신문사 11개사, 방송 27개사, 통신사 6개사 등 44개 언론매체가 통폐합됐고, 이와 별도로 정기간행물 172종이 등록취소가 되는 등 범위가 넓었다. 1, 2차에 거쳐 1000여명의 언론인들이 강제 해직돼 일자리를 잃게 됐고, 그 영향으로 친 군사정권 언론사들이 활개쳤으니 저녁 9시 뉴스가 ‘땡’하고 시작되면 전두환 대통령의 일정이 방영되는 등의 이유로 당시 방송뉴스는 ‘땡 전’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처럼 언론들은 제구실을 하지 못했으니 정말 암울했던 시기였다.

각설하고, 그때와는 사정은 다소 다르기는 하나, 역대 정부에서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다. 정치권력이 집권과 통치를 위해 언론부터 장악한다는 것이니, 어떠한 이유이든, 발상에서든 언론이 ‘권력의 견제’라는 언론 본연의 제 구실을 하지 못하면 자유민주주의의 후퇴는 당연하고 국민들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요즘도 사이비 언론으로 인한 부작용이 따르는 것은 사실이다. 가짜뉴스들이 범람하고, 검증이 안 된 인터넷 기사들이 홍수를 이루는 폐해가 있지만 그것은 언론의 큰 틀에서 보자면 미미한 것들이고, 현행법에서도 얼마든지 규제가 가능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여당이 언론중재법을 꺼내 들어 야당이 반대하고 언론인, 지식층, 시민단체들이 반발했다. 개정안 내용에서 개정 필요성에서는 여야 시각이 다소 다를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언론을 위축하게 만드는 것이니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나오고, 실제 군부 독재시절의 언론통․폐합이 시도된 바와 같이 그 목적․

심지어 국가인권위원회에서조차 언론중재법개정안의 핵심이 되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근거 조항을 문제삼기도 했다.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 정의와 그 요건들이 명시되지 않아 징벌권 주체의 “주관적·자의적인 해석에 맡겨질 수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여당이 발의한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자칫하면 정치 성향이 다른 비판적 언론 보도, 부패·비리 범죄를 폭로하는 탐사 보도까지 위축될 수 있다고 인권위가 우려한 것인데, 이는 언론의 피해보다 언론 규제로 인해 결과적으로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당하는 등 민주주의의 신장에 장애가 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 보니 민주당에서 한발 물러서 언론중재법개정안에 대한 본회의 상정을 철회하고, 개정안은 여야가 특위를 구성해 연말까지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민주당이 수적 우세를 빌미로 밀어붙이려던 언론중재법개정안이 내년에는 어떤 양태로 변화될지 알 수 없다. 민주당이 또 다시 본회의에 상정 시도할지 모를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언론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제5공화국에서처럼 언론 찍어누르기는 결코 안 될 일, 시대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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