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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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지난 6일 김포 장릉(사적 202호, 추존 제16대 인조 부 원종 및 인헌왕후 구씨) 근처에 아파트를 건설한 건설사 세 곳과 인천 서구청을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고 44개 동 가운데 39개 동에 대해 공사중지명령을 내렸다.

건축 중인 아파트는 검단신도시에 지어지는 주택단지이다. 높이는 20~25층이고 모두 44개 동이다. 현재 골조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건설사 측은 문화재 반경 500미터 이내에 건축물을 지을 때는 문화재청의 심의를 받아야 하는 절차를 밟지 않고 아파트 공사를 진행했다. 인천 서구청은 문화재청의 심의 과정이 없었음에도 경관 심의와 건축허가를 내줬다. 문화재보호법 상 사전 심의를 받아야 하는 규정을 지자체도 건설사도 모를 리가 없다. 관공서가 법률을 모르면서 건축허가를 내주고 건설사가 법률을 모르면서 아파트 건립을 진행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주택 규모는 3401가구에 이르고 분양받은 사람들이 집이 완공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수분양자가 이렇게나 많은데 설마 구제되지 않겠느냐는 말이 돌고 있다. 건물이 완공단계에 가까운 상태가 됐는데 설마 건물을 어떻게 하기야 하겠느냐는 심리가 널리 퍼져 있다. 문화재 관련 법률을 위반한 건축물에 대해 완공단계에 이르렀다고 해서 대충 봐주고 넘어간다면 남아나는 문화재가 없을 것이다. 문화재 파괴의 대문을 열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앞으로 39개 아파트 건물 대부분을 7층 높이만 남기고 모두 철거하거나 문제의 건물 전체를 철거해야 할 수도 있다. 이 건물을 철거하라는 명령을 내리면 건설사는 법정 싸움으로 끌고 갈 것이다. 문화재청이 지난 8월 공사중지명령을 내렸을 때도 건설사들은 공사중지명령 가처분 신청을 냈고 행정행위 취소를 구하는 본안소송을 하는 건설사까지 등장했다. 문화재청은 한 치도 물러서지 말고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이게 국민의 마음일 것이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법률 위반 사건이 아니다. 국기 문란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감사원이 나서야 한다. 문화재청의 심의 없이 어떻게 경관 심의가 통과됐고 건축허가가 났는지, 인천도시공사의 책임은 무엇인지 전모를 밝혀내고 국가기관 종사자의 직무유기와 부정비리 의혹을 파헤쳐서 단죄해야 한다.

업체는 2014년 인천도시공사가 땅을 넘겨줄 때 택지 개발 현상 변경 허가를 받아서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건 변명에 불과하다. 타 기관 핑계를 댈 게 아니라 법률 규정은 건설업자 스스로가 명확히 파악해서 대처해야 할 문제이다. 문화재청은 건축 심의를 받을 때는 택지개발 허가와는 별개로 설계도, 입면도, 배치도, 건설사 이름 등을 밝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문화재청의 말이 백번 옳다.

건설사라면 문화재와 사적, 특히 왕릉이 500미터 이내에 있을 때는 건축 규정이 까다롭게 적용된다는 걸 알고 있어야 한다. 법령과 고시 내용이 어떻게 바뀌는지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다. 2017년에 문화재청은 문화재 반경 500m 안에 20m 이상(7층 높이)의 건물을 지을 때는 문화재청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고시를 발표했다. 이 고시를 확인도 하지 않고 공사를 강행했다는 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가?

건설사들은 수분양자들을 볼모로 사태를 무마하고 넘어가려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지자체와 도개공도 큰 책임이 있다. 국가의 이름으로 건축허가가 나고 건물이 다 올라갈 때까지 제지받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할 때 국가의 책임이 무겁다. 국가 역시 책임을 다해 수분양자들이 손해 보는 일이 없도록 지원하고 보상해야 한다.

김포 장릉은 다른 41기의 조선왕릉과 함께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으로 우리 후손은 물론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소중히 간직해야 할 유산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문화재 보호의 전기를 마련하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경종을 울리는 의미에서도 아파트 건물을 철거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아프지만 이 방법밖에 대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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