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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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선 후보가 당내 경선 토론에서 ‘청약저축통장을 만들어 본 적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집이 없어 만들어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바로 입길에 올랐다. 청약저축통장은 집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이 집을 사거나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갈 때 필요한 건데 엉뚱하게 말했으니 말들이 안 나오면 이상한 일이지 않겠는가?

주택청약 관련 통장은 예전에는 네 종류가 있었다. 2009년에 하나의 통장으로 통합됐다. 현재 가입자가 2800만명이나 된다. 집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으리라. 청약저축통장은 주택소유 여부나 나이 제한 없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어린이는 물론 주택을 1000채 가지고 있는 사람도 가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국민 절반이 가입한 주택청약인데 가입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압류대상의 금융부채가 있는 사람들로 신용불량자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이다. 은행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청약저축통장을 새로 만드는 걸 제한하거나 이미 만들어진 청약통장에 돈을 부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추심대상의 금융부채가 있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다. 대부분 집이 없고 소득은 바닥이다. 신용이 안 좋아 대출받을 방법도 없고 사적으로 돈을 꿀 수도 없다. 전세를 얻을 수 있는 보증금이 없거나 아주 적은 상태다. 그래서 상태가 매우 안 좋은 집에서 산다. 보증금 조금 있는 반전세나 월세를 살아야 한다. 반지하, 옥탑, 고시원 등에 사는 사람도 많다. 노숙하는 사람도 있다.

악성 채무에 시달리는 무주택자에게 꼭 필요한 게 공공임대주택이다.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가려면 대부분의 경우 청약저축통장이 필요하다. 추심에 쫓기는 채무자는 청약저축통장 개설과 입금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공임대주택 입주 기회를 사실상 박탈당한다. 청약저축통장이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청약저축이 제한되기 때문에 최소한의 주거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마저 막혀 버리는 것이다.

대안은 있다. 채권추심에 쫓기는 채무자도 청약저축통장을 개설하도록 하고 매월 일정액을 부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안한다. 청약저축통장 불입금에 대해 압류를 방지할 수 있도록 하자. 기초생활수급권자와 기초연금 받는 사람에게 압류방지통장을 만들 수 있도록 한 것처럼. 액수는 매월 2만원으로 한정하면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청약저축은 월 최소 2만원부터 최대 50만원까지 부을 수 있다. 최소 불입액수인 월 2만원만 부어도 일정 횟수에 이르면 공공임대주택 입주에 큰 도움이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자는 주거문제 관련 토론회에 나온 국토교통부 과장에게 여러 차례 취지를 설명하고 간절히 부탁 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이 자리에서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제안한다. 국회의원과 여야당 대표에게도 제안한다. 채무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청약저축에 들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 주기 바란다. 나의 개인 생각이라기보다는 빚에 쫓기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이다.

‘빚은 개인이 잘못해서 생긴 것이기 때문에 청약저축 못 드는 것 또한 개인이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차분히 한번 생각해 보자. 빚이 생기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업을 하다가 빚이 생기는 경우도 있고 본인 또는 가족의 병 치료비와 간병비를 대다가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사람도 있다. 불의의 사고로 빚이 쌓인 경우도 있다. 내가 아니라 남이 신용을 지키지 않아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떠안는 사람도 있다. 보증 잘못 섰다가 낭패를 당한 경우도 있다. 사연이 무엇이든 빚에 허덕이는 사람들은 경제생활이 극도로 곤궁해지고 주거생활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악성 부채로 신용이 극도로 나빠진 사람들은 가장 고통스런 삶을 사는 국민이다. 이들이 슬픔과 고통, 절망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나누는 건 국가와 사회의 책무라 믿는다. 이들이 살 집을 당장 내어놓으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들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나서달라는 것이다.

모든 국민에게 청약저축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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