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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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니라고 본다. 우리의 정상적인 군사훈련을 두고 북한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시대가 열린 지 꽤 됐다. 따라서 목전에 다가온 한미 연합훈련을 두고 아직 정부의 완전한 결심이 내려지지 않은 것 같다.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라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에 한·미 연합훈련 실시 여부가 정치권 최대 쟁점으로 부상한 꼴이다. 김여정은 겨우 차관급인 당 부부장이다. 왜 그가 나서는가. 족벌세습 정권의 대리인 말 몇 마디에 굽신거리는 작태, 이걸 우리는 가관이라고 부르고 싶다. 지도부의 거듭된 “훈련 불가피” 입장에도 여당 의석수 3분의 1을 훌쩍 넘는 범여권 의원들은 지난 5일 공개적으로 훈련 연기 촉구에 나섰고, 약점을 잡은 야당은 “대한민국 집권 여당이 김여정의 하명부인가”라며 맹공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 훈련 주체인 한미 군 당국은 ‘로우키(low-key 절제된)’로 대응하며 하반기 연합훈련을 실시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군 당국은 “훈련 시기와 규모, 방식 등이 확정되지 않았고 양국이 협의 중”이라며 말을 아끼고 있지만, 코로나19 상황 등을 고려해 규모를 축소해 실시할 전망이다. 다만 양국 막판 결단에 따라 극적인 방향 전환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김여정 부부장의 중단 압박 담화로 한미훈련이 통신연락선 복원 이후 남북관계 진전 여부를 가늠할 분수령으로 부상한 상황에서 정보당국은 훈련 강행에 따른 북한의 군사적 도발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어서다. 북한은 도발할까, 관망 태세를 유지할까.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을 ‘북침 연습전쟁’으로 간주하며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남북 통신선이 복원된 지 5일 만인 이달 1일 발표한 담화에서 남북관계 개선 조건으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내걸었다. 김 부부장은 한미 연합훈련이 진행된다면 “남북관계의 앞길을 더욱 흐리는 재미없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를 압박했다. 아울러 국가정보원은 3일 “한미연합군사훈련을 강행할 경우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에 나설 수 있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국정원은 한미훈련을 예정대로 실시할 경우 북한의 고강도 대응을 우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정원이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로 제시한 북한의 군사 도발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다.

2016년 8월 북극성-1형을 시작으로 SLBM 개발을 본격화한 북한은 2019년 10월 북극성-3형 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0월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선 ‘북극성-4ㅅ’과 ‘북극성-5ㅅ’으로 표기된 신형 SLBM 추정 미사일을 선보였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아예 모라토리엄을 파기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행정부의 변화와 비핵화 협상의 장기 교착 상황에서 굳이 ‘옛날의 약속’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는 취지다.

그러나 올해 경제난 타파를 위해 전력을 기울이는 북한이 굳이 추가적인 국제사회의 제재를 자초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부호도 있다. 정부 및 여권 일각에서 제기한 ‘한미훈련 연기론’에도 불구하고 한미 군 당국은 계획대로 이달 중순 예정된 한미연합군사훈련 실시를 기정사실화한 것으로 알려진다. 북미 간 협상 테이블이 만들어지고 남북 대화가 재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의 훈련 중단 압박만으로 미국을 설득할 명분이 크게 부족한 탓이다.

6일 복수의 군 관계자에 따르면 한미 군 당국은 이미 10∼13일 사전연습격인 위기관리참모훈련, 16∼26일 연합지휘소훈련(21-2 CCPT) 계획아래 축소 진행하는데 무게를 두고 준비 중이다. 군 안팎에서는 지난 3월 전반기 훈련 때와 마찬가지의 군사적 도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군사대비태세 유지에도 만전을 기한다는 방침이다. 정작 북한은 김여정 담화 이후 관망 태세를 유지하는 모양새다. 북한의 도발은 우리에게 주는 위협보다 자신들에게 갈 데미지가 더 클 수 있다는 것을 김정은과 김여정이 모를 리 없다. 북한의 불질은 결국 유엔과 미국의 제재 수위만 높여주고 서로 접근을 노리는 워싱턴과 평양의 거리를 더욱 넓혀주게 될 것이다. 고로 북한은 남의 정상적인 군사훈련에 신경 쓰기보다 무너져 내리는 자신들의 체제안정에 눈길을 돌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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