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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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둔산 선사유적은 3000년 전 갑천 유역의 도시였다. 지난 1991년 발견된 이 유적에서 70여기 넘는 신석기 집 자리, 수십여 곳의 청동기 집 자리 발견은 해방 이후 가장 큰 고고학적 발견이었다. 현 대전종합청사자리에 지하 수 십여m에 달하는 구석기 층위가 찾아졌다. 수만년 전부터 갑천에 살았던 인류의 고향이었던 것이다.

이런 선사시대의 대단위 추락 도시가 찾아진 경사에도 불구 행정당국은 개발이라는 목표를 앞세워 종합청사자리에 찾아진 구석기 유적은 매몰하고 말았다. 다만 언론과 시민단체의 저항에 굴복해 지금의 선사유적 1만평만 보존하게 된다.

그만이라도 다행이라는 의견도 있으니 종합청사자리에 있는 구석 유물층을 우리 관으로 보전해 청사를 지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남아있다. 만약 이렇게 유적을 보존했다면 외국인들은 아마 높은 점수를 주었을 게다. 대한민국의 문화재 행정의 좋은 선례로서 회자됐을 게다.

이곳에서 찾아진 토기는 빗살문 토기가 많았다. 그리고 조질의 무문토기도 다수 수습됐다. 빗살문은 나뭇가지로 방사선대의 선을 그린 것으로 무문토기는 무의가 없는 토기를 말한다. 두 토기가 같은 유적에서 동시에 나옴으로써 무문토기의 편년을 보다 높게 올려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무문토기는 빗살문 토기보다 소박해 더 정감이 간다. 전국의 유적을 답사하다보면 제일 많이 수습되는 것이 바로 무문토기다.

지난주 한국역사문화연구회와 글마루취재반이 조사한 고구려산성 고성산성에서도 뜻밖에 조질 무문토기가 수습됐다. 태토는 모래가 많이 섞여 있으며 색깔은 붉고 그릇의 표면은 아무런 무늬가 없는 대신 두꺼웠다.

고성산성을 구축하기 전 일단의 원삼국시대 집단이 모여 살았음을 알려주는 유물이다. 그 시기는 2천년이 훨씬 넘을 수도 있다. 고구려성도 중요하지만 성을 구축하기 전 이곳에서 정착해 삶을 영위 선사인들의 유적도 중요하기는 마찬가지다.

강원도 지역은 뜻밖에도 선사유적과 유물들이 많이 찾아지는 곳이다. 북한강 남한강으로 이어지는 상류의 여러 하천은 선사인들이 정착하기에 좋은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양구선사박물관은 우리나라에서 제일먼저 개관한 곳이다.

최근 이집트에서 약 3000년 전에 건설된 고대 도시 유적이 발굴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모래 속에서 찾아진 유물들은 금방 만든 것처럼 보존상태가 좋다. 특히 적색의 무문토기 그릇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3000년 전 유물과 너무 흡사해 흥미롭다. 이 시기 동서양이 같은 토기를 사용한 것이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아름다운 여인 얼굴상은 흡사 홍산문화의 여신을 대하는 기분이다. 이집트는 이 유적을 철저하게 보존해 관광자원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외국에서 수천년 전 유적이 나오면 세계적 뉴스가 된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이런 흥분을 공유하지 못한다.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는 춘천 중도유적. 세계적인 선사유적이다. 3000년 전의 타임캡슐이라고도 한다.

이 유적도 대전 선사유적의 재판이 안 될까 문화계의 걱정이 크다. 중도유적 지킴본부 등 150여개 시민단체들이 현재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평화적 집회 보장과 레고랜드 승인 철회를 요구하며,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대전 둔산 선사유적의 예를 감안하더라도 한번 파괴된 유적은 복원이 안 된다. 이 시기 살았던 선조들이 무지했다는 말을 듣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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