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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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왕조 신라 국운이 쇠퇴한 것은 바로 가혹한 세금징수 때문이었다. 태봉을 세운 궁예도 사치한 나머지 신라의 혹세정책을 이어받았다. 민심이 악화돼 궁예는 백성들로부터 신임을 얻지 못해 부하장병들에게 축출되고 말았다. 왕권을 이어받은 이가 바로 왕건이다. 왕건은 제왕들이 민심을 얻지 못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제일 먼저 시행한 것이 바로 세금을 내려주는 일이었다. 기록에는 전세(田稅)의 경우 수확량의 10분의 1만 거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바로 ‘취민유도(取民有度)’ 정책이다. 백성으로부터 세금을 거둘 때에는 일정한 법도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유교국 조선이 말년에 국정 혼란을 초래한 것도 바로 가혹한 세금 징수 때문이었다. 삼정(三政)의 문란과 지방 수령들의 백성들에 대한 착취로 민심의 분노는 들끓었다. 오죽하면 춘향전을 지은 작자미상의 문사가 당나라 이백의 시를 개작해 ‘금잔의 아름다운 술은 천 백성들의 피요, 쟁반에 가득 담은 고기는 백성들의 고혈’이라고 했을까.

조선조 역대 왕들이 암행어사를 지방에 파견한 것은 민심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조세는 가혹하지 않은가, 수령들이 탐욕하지 않은가, 인륜 교육은 잘 되고 있는가, 백성들이 임금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등을 살피는 것이 주요 임무였다.

정조는 즉위 초 정순왕후의 오빠 김귀주와 그 심복인 홍양해와 심혁 등을 잡아 가뒀다. 임금은 백성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이들이 충청도 출신이라 어사 하나를 보내 민심을 알아봤다. 어사가 이들의 고향인 서해안에 잠입해 민심을 알아보니 오히려 백성들이 기뻐하는 것이었다. 정조는 어전에서 암행어사의 복명을 받고 기뻐하는 눈빛이었다고 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다산이 불후의 명저 목민심서를 쓴 것은 바로 암행어사로 나가 민초들의 고된 삶을 직접 파악하고 썼기 때문이다. 그는 ‘흉년에는 민심이 거칠어진다(凶年, 子弟多暴. 草竊小盜, 不足以大懲也)’고 했다. 다산의 여유당전서 형전(形典)에 나오는 말이다. ‘나라가 가난해지면 자제들이 포악해지고 좀도둑이 들끓는 것이니 형벌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라고 했다. 시경에 나오는 대목이다. ‘은나라가 백성들의 마음을 잃지 않았을 때는 능히 하늘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니 천명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즉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나라를 얻고, 신망을 받지 못하면 나라를 잃는다는 말이다.

맹자는 천하의 주인은 백성들이라고 정의했다. “백성들이 귀중하다. 사직(社稷)은 그 다음이며 임금이 제일 가볍다. 따라서 민심을 얻으면 천자가 되고, 천자의 마음을 얻으면 제후가 되고, 제후의 마음을 얻으면 대부가 된다”고 가르쳤다.

4.7재보궐선거 결과 성난 민심이 모두 야당후보를 선택했다. 야권 서울에서 민심은 집권여당에 등을 돌렸다. 민심이 떠난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정책 실패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부터 ‘일자리 정부’를 표방했지만 주 40시간 이상 정규직 일자리는 200만개 가까이 줄었다. 지금은 젊은이들은 알바자리도 구하기 어렵다. 공단의 가동률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경매물건으로 나온 폐업 공장들이 넘쳐나고 있다. 집집마다 종합부동산세, 재산세가 급등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집을 팔거나 대출을 받지 않으면 세금을 낼 수가 없다. 세금을 내지 않으면 압류딱지가 붙고 경매에 처해진다. 강남에 집을 가진 중산층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것이 가혹한 정치가 아니고 무엇인가. 세금이 과중하면 국민의 마음을 잡지 못하고 권력을 잃는다는 섭리를 깨우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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