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강은 인간의 삶을 지탱해 주는 젖줄이다. 그러나 때로는 눈물을 뿌리는 비극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옛날에는 강을 건너다 배가 침몰해 빠져 죽는 경우가 많았고, 지금은 세상을 비관한 이들이 목숨을 버리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사는 것이 힘들다 보니 자포자기 심정에서 한강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아들아, 사랑하는 내 아들. 지금 어디에 있니, 엄마랑 같이 집에 가자” “안경 끼고 키는 175, 남색 잠바 착용… 보신 분은 연락 부탁드립니다, 도와주세요.”

얼마 전 서울 반포동 잠수교에 아들을 애타게 찾는 어머니의 노란 쪽지가 눈길을 끌었다. 노란색 메모지는 모두 100여장이 넘었으며 4~5m 간격으로 빼곡히 붙어있었다.

 

그런데 애타게 찾는 어머니의 호소에도 불구, 며칠 후 아들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나이 어린 청년은 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죽은 청년은 자신이 찍은 영상을 하나 남겼다. “엄마 아빠 미안해. 열심히 살아볼라 그랬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거 같아. 난 그냥 까미 옆에 갈게”라고 했다. 까미는 김씨 가족들이 15년간 키우다 죽은 강아지 이름이다.

 

시신이 발견되자 청년의 누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서울 가서 확인해보니 우리 막둥이 많이 상해있었어요. 동생 데리고 해남으로 갑니다. 부모님께선 우리 아들 배 많이 고팠을꺼라고 맛있는 거 많이 많이 차려줘야 한다고… 어서 가자. 어서 가자. 하시며 계속 우십니다. 마음이 찢어집니다.” 참으로 눈물겨운 사연이다. 그런데 이 같은 비극 어디 이 청년 뿐이랴.

 

세상이 어렵다 보니 이렇듯 한강은 눈물의 강이 되고 말았다. 투신자살 시도건수가 한해 500건이나 되며 하루에도 19여건이 넘는다고 한다. SOS생명의 전화는 한강 다리를 찾은 자살 위기자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도록 한강 교량에 설치된 상담 전화기다. 그동안 1600명의 생명을 살렸다는 것이다.

 

청년의 죽음은 강을 건너는 임에게 건너지 말라고 절규했던 고조선의 ‘공무도하가(공후인)’를 연상 시킨다.

임아 그 물을 건너지 마오(公無渡河) / 임은 끝내 물을 건너셨네(公竟渡河) /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墮河而死) / 가신 임을 어찌할꼬(當奈公何).

 

한강 유역에는 행복한 설화보다는 비극적인 얘기가 많다. 용이 승천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떨어져 죽은 얘기도 있고, 광나루에는 용이 승천하면서 사람들이 잡아끄는 바람에 빛나는 용 비늘을 떨어뜨렸다는 설화도 전해 온다. 한강 하류에는 인조 때 왕을 태우고 강화도로 가다 죽은 소년 어부 순돌목의 비극적 사연이 전해져 오고 있다. 인조가 물살이 격랑으로 변하자 혹시 죽이려 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순돌의 목을 잘랐다. 순돌이 죽으면서 그릇이 떠내려가는 곳으로 배를 저으면 강화에 닿을 수 있다고 해 그 말을 따랐더니 무사히 강화에 닻을 내릴 수 있었다. 왕이 비를 세워 억울한 어부의 넋을 위로했다고 한다.

 

신이 주신 목숨을 자신이 끊는 것은 미화될 수 없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은 ‘자살이야말로 비겁자의 행동’이라고 단언했다. 19세기 미국의 여류 시인 도로시 파커는 자살에 대해 재미난 시를 썼다.

면도칼은 아프고, 강물은 축축하다/ 산은 얼룩을 남기고, 약은 경련을 일으킨다/ 총기 사용은 불법이고/ 올가미는 풀리며/ 가스는 냄새가 지독하다/ 차라리 사는 것이 낫다.

극단적인 선택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부분 제2의 인생을 산다고 한다. 죽을 용기를 가지고 다시 도전한다면 못할 것이 없지 않은가. 분명 역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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