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대동단(大同團)은 3대 강령을 제시하였으며 그것은 ‘독립(독립). 평화(平和). 자유(自由)’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무장투쟁적인 요소나 사회주의적인 요소는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격을 가진 대동단의 단원 중에서도 윤용주(尹龍周) 같은 경우는 무장투쟁을 주장하였지만 현실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유로 수용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당분간은 지하문서를 제작함에 주력하기로 하였는데 그 중심인물은 최익환(崔益煥)이라 할 수 있었다.

최익환은 권헌복(權憲復)을 통하여 삼종숙(三從叔)이면서 광주 갑부의 아들 권태석(權泰錫)을 포섭하는 데 성공하여 권태석은 가입과 동시에 600원의 자금을 제공하였다.

최익환은 이러한 자금으로 인쇄기와 용지를 구입하여 당시 주교정 125번지의 자신의 셋집에 설치하고 본격적인 지하 문서 제작에 착수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지하문서를 제작하는 데 있어서 문제가 장소를 노출하지 않는 것이었는데, 최익환은 처음에는 장소를 주교정에서 시작하였으나 신변의 위협을 느끼게 되어 5월에 종로 5정목의 양제은(楊濟殷)의 집으로 옮겼다가 다시 여의치 않자 이번에는 을지로 5정목 이건호(李建浩)의 집으로 옮기는 등 여러 차례 이동하는 가운데서 인쇄 작업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일경의 수사망이 대동단을 향하여 좁혀지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대동단의 핵심 간부 최익환이 작성한 지하 문서가 비밀 당원들을 통하여 배포되었는데, 이러한 정황을 파악한 일경들이 대동단의 암약(暗躍)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협(全協)을 비롯한 대동단의 수뇌부는 인쇄 책임자인 최익환을 비롯하여 이능우(李能雨) 그리고 권태석의 도피를 지시하였지만 결국 일경에 출판법(出版法) 및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한편 체포 이후 일경의 가혹한 고문을 받았지만 끝까지 배후를 부인하여 가까스로 대동단의 실체가 드러나지는 않았다.

이와 관련해 대동단의 문서를 작성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던 최익환의 체포는 대동단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는데 전협을 중심으로 한 수뇌부는 다시 조직을 재정비하여 새로운 규칙을 제정하기로 하였는데 이 작업을 주로 정남용(鄭南用)이 작성하였으며, 전협과 김가진(金嘉鎭)의 교열(校閱)을 거쳐 독립대동단(獨立大同團) 임시규칙(臨時規則) 및 대동단(大同團) 임시규칙세칙(臨時規則細則)을 마련하였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