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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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한 말 월단평(月旦評)으로 당대를 주름잡던 인물평의 대가 허소(許劭)가 조조(曹操)의 부탁으로 마지못해 그 유명한 말을 전한다. ‘치세지능신(治世之能臣), 난세지간웅(亂世之奸雄)’이란 게 그것이다(<後漢書>, 許劭列傳). 태평성대엔 유능한 신하이겠지만, 난세에는 간사한 영웅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조조는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자신의 큰 야망을 몇 번이나 다짐했을 것이다. 결국 동한 말의 난세가 조조를 불러냈던 것이며, 조조는 판세를 읽고 인재를 보는 그 천재적 능력을 바탕으로 천하를 품을 수 있었다.

난세다. 코로나19로 인한 ‘일상의 몰락’이 견디기 힘들만큼 세상의 인심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지만, 비단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특히 내 달의 재보선과 일 년여 앞으로 다가온 차기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여러 군상들의 행태를 보면 저절로 ‘난세’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뇌곤 한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그들의 내면을 보면 막장급의 속물적 셈법이 난무하고 있다.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정치꾼들’이란 표현보다 더 적합한 말을 찾기가 어렵다. 겉으로는 정의나 공익을 말하지만 실상은 제 잇속부터 챙기려는 저급한 술수들이 판을 치고 있다는 뜻이다.

하기야 어디 국회의원들뿐이겠는가. 스스로 검찰총장직을 던진 윤석열은 ‘정치 아닌 정치’처럼 정치권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겉으로는 헌법이나 정의를 말하지만, 그의 셈법은 차기 대선에 꽂혀 있는 듯 보인다. 국민이 쥐어준 검찰수장의 칼이 자신의 정치도구로 전락하는 순간 검찰조직은 무엇이 될 것이며, 또 국민은 그런 검찰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나 성찰은 별로 없어 보인다. 기회 있을 때마다 현 정권의 ‘약한 고리’를 때리면서 국민의 지지를 챙기겠다는 심사라면 그 또한 ‘양두구육의 속물’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어느 결정적 순간에 그의 손에 들려있는 ‘개고기’가 들통 나고 말 것이다. 부디 ‘정치검찰’이 종언을 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랄 뿐이다.

백신 접종이 속도를 내고 있다. 방역부터 백신 접종까지 한국의 역량은 놀라울 만큼 선진화 돼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물론 그 주역은 역시 국민이다. 일상의 불편과 경제적 타격을 감수하면서도 타인에 대한 배려까지 아끼지 않는 시민의식은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의 ‘꽃’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당초 정부의 방역조치를 비난하더니, 최근 백신 접종 때는 정부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면서 근거 없는 백신 불안감까지 증폭시키고 있다. 정치인을 넘어서 ‘인간의 조건’조차 갖추지 못한 흉물들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런 흉물들이 정치권 안팎에 너무 많다는 점이다. 난세의 표상이다.

일부 언론은 한술 더 뜨고 있다. 정치적 좌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사회의 ‘공적 기능’은커녕, 대놓고 병적인 왜곡과 편견 심지어 특정인을 띄우는 낯 뜨거운 요설들이 지면과 화면을 장식하고 있다. 게다가 전문가를 자처하는 일부 인사들의 ‘곡학아세’는 눈뜨고는 보지 못할 지경이다. 하지만 그런 저급한 언론을 접하는 국민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뿐이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부끄럽다 못해 분노가 치밀 정도다. 역시 난세의 표상이다.

좀 냉철하게 따져보자. 낡은 진영대결의 잣대로 보지 마시라. 역대 정권 가운데 집권 5년 차에 레임덕을 맞지 않은 정권이 없었다. 아니 레임덕을 넘어서 사실상 정권을 유지하기도 어려웠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코로나19와 검찰조직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정권의 바탕은 탄탄하다. 야당이 온갖 여론선동을 하더라도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견고하다. 일부 수구언론이 아무리 음해를 하고 왜곡을 일삼아도 국민은 냉철하다. 오히려 언론개혁에 더 큰 박수를 보내는 것은 수준 높은 민심의 척도로 봐도 좋을 것이다. 난세에 진짜 영웅은 ‘국민’인 셈이다.

최근 불거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땅 투기 의혹은 국민적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들 역시 양두구육의 아류에 다름 아니었다. 어디 그 곳 뿐이겠는가. 우리 사회 곳곳에 ‘개고기 장삿꾼’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게다가 그런 비리의혹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다만 4월 재보선을 앞두고 민감한 곳에서 광범위하게 터진 것이 파장을 더 키우고 있는 것이다. 좀 더 일찍 대책을 세우지 못한 것이 통한으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처방’이 더 중요하다. 말 그대로 발본색원해서 패가망신시키는 것이 옳다. 모든 행정력은 물론, 부족하다면 법을 제정해서라도 일벌백계의 표상을 만들어내야 한다. 청와대와 정부의 결기를 지켜볼 일이다.

집권 말기는 언제나 그랬듯이 ‘난세’를 생각게 하는 아수라장이 곳곳에서 펼쳐지기 마련이다. 최근의 정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중요한 것은 난세를 평정할 수 있는 ‘처방의 힘’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참으로 다행스런 것은 문재인 정부의 집권 5년 차는 그런 힘이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역대 정권 처음이다. 따라서 투기에 나선 LH 직원들에 대한 단호한 응징은 ‘정치적 레토릭’이 아니길 바란다. 그리고 ‘징벌적 배상’을 골자로 하는 언론개혁은 조만간 반드시 결론을 내야 한다. 부동산정책은 기필코 투기꾼들의 텃밭이 돼서는 안 된다.

지난 총선에서 180석의 거대 여당을 만들어 준 것은 ‘쉼 없는 국정개혁’에 나서라는 ‘국민의 명령’이었다. 이쯤에서 자칫 멈칫 할 경우 역사가 거꾸로 메쳐 질 수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그동안 움츠리고 있던 괴물들의 세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난세라고 했다. 작은 개미 구멍이 큰 둑을 무너뜨린다(堤潰蟻穴)는 말이 있다. 문재인 정부 집권 5년 차, 지금 딱 경계해야 할 경구가 아닌가 싶다. 더 냉철하고 더 단호하고 더 철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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