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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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파죽지세다. 거의 존재감조차 미약했던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최근 절정의 인기를 과시하고 있다. 당내 경선에서 나경원 전 의원을 누르는 저력을 보여주더니 며칠 전엔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의 단일화 경선에서도 완승을 했다. 게다가 최근의 여론조사를 종합해 보면 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와의 양자 대결에서도 오세훈 후보는 상당한 우위를 보이고 있다. 이대로 열흘 정도만 더 간다면 서울시장 보선에서의 승리도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앞으로 열흘이라면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그 사이 몇 번이나 여론이 요동칠 수 있는 긴 시간이다. 게다가 지금까지는 응답률도 미미한 전화여론조사 결과일 뿐이다. 그마저도 ‘이미지’에 매몰된 ‘단일화 게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런 형해화된 ‘게임의 시간’은 끝났다. 이제부터는 박영선 후보와의 ‘진검승부’가 남아있다. 따라서 오세훈 후보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전쟁을 치러야 한다. ‘이미지’나 ‘쇼’로 승부하는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시민들은 진지하게 묻고 있다. 보다 본질적이고 리얼한 오 후보의 실체를 묻고 있다. 여기에 오 후보는 답해야 한다.

딱 10여 년 전 오세훈 후보는 우리 아이들의 ‘무상급식’에 반대한다며 서울시장직을 걸고 서울시민들과 싸웠다가 패퇴했다. 물론 무상급식 반대가 단지 어린 학생들에게 ‘공짜 밥’ 주는 것이 싫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서울시장직 사퇴는 보편복지에 대한 반대요, 동시에 오 후보 자신의 복지정책 신념을 관철시키려는 정면돌파의 수단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오 후보의 그런 신념과 철학은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그 후 시대는 변해도 너무 변했다. 이제 무상급식은 어디를 가든 ‘상식’이 돼 버렸다.

게다가 정치권에서는 벌써 ‘기본소득’을 논의하는 시대로 진입했다. 다시 말하면 오 후보는 불과 몇 년 뒤의 시대변화도 읽지 못하는 ‘구태’로 각인돼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별 일 아니라는 듯이 10여년 만에 다시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는 의미와 배경은 무엇인가. 우리 아이들의 공짜 밥그릇을 다시 빼앗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 사이에 신념과 철학이 변했는가. 오 후보는 답해야 한다.

며칠 전 단일화에서 승리한 직후 오세훈 후보에게 한 기자가 물었다. 앞으로도 ‘태극기 세력’과 함께 할 것이냐고. 이에 오 후보는 ‘그렇다’고 답했다. 물론 놀라운 얘기는 아니다. 2019년 10월에도 전광훈 목사 등이 주도한 ‘광화문 집회’에 참석해 저급한 발언들을 쏟아낸 적이 있다. 당시 오 후보는 태극기를 든 집회 참석자들을 향해 ‘여러분들이 대한민국의 희망’이라고 외쳤다. 그리고 그간 태극기 세력과 함께 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려고 ‘광화문 집회’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물론 그럴 수 있다. ‘태극기 세력’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동시에 유권자들이다. 그렇다면 분명히 답해야 한다. 특히 중도세력이 묻는다. 태극기 세력을 대한민국의 ‘희망’으로 선포한 당시의 정치적 신념과 소신이 지금도 변함 없는가. 그리고 태극기 세력과 끝까지 함께 할 것인가. 오 후보는 이에 답해야 한다.

오세훈 후보에 대한 높은 지지율은 지난 두 차례의 단일화 경선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여론조사 결과물일 뿐이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여론조사 결과는 특정 시점에서의 표피적 여론을 짚어보는 참고자료일 뿐이다. 물론 그 표피적 여론이 실체를 형성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여론조사 결과와 투표결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렇다면 지금껏 오 후보가 보여준 것은 그 여론조사를 통해 서울시민들의 관심을 받았다는 것뿐이다. 특정인에 대한 강한 비토의 수혜자로, 거대 야당의 조직된 힘으로 당 안팎의 경선을 승리로 이끌면서 지금까지 왔다.

그것 외에 오 후보 자신이 시민들에게 뭘 보여줬는지를 묻는다면 뭐라 답할 것인가. 특히 오 후보가 생각하는 서울의 미래는 어떤 것인지를 보여줘야 한다. 재건축 규제를 철폐해서 한강변에 고층 아파트 스카이라인을 구축할 것인가. 그리하여 서울시를 온통 재건축 공사판으로 만들겠다는 것인가. 그도 저도 아니면 이번 선거는 아예 ‘문재인 정권 심판’의 깃발을 들 것인가. 그렇다면 서울시장 선거를 정권심판론으로 몰고 가는 것이 과연 지방선거의 취지에 부합하다고 보는가. 이에 대해 오세훈 후보는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난파 상태의 제1야당 국민의힘이 오세훈 후보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모처럼만에 힘을 내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야당이 무능하면 여당은 오만하기 마련이다. 야당이 건강해야 여당도 긴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오 후보의 활약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낸다면 국민의힘이 거듭날 수 있는 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침 내년엔 대통령선거가 예정돼 있다. 국민의힘이 좀 더 길게, 좀 더 깊게 접근해야 할 이유라 하겠다.

혹여 오세훈 후보와 국민의힘이 지금의 여론조사 결과에 취해 또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일이다. 자칫 한 방이면 훅 갈 수도 있는 그런 여론조사만 쳐다보고 있다면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바닥에 흐르는 민심의 줄기를 읽어야 한다. 국민의힘은 비대위체제만 벌써 10개월째를 넘기고 있다. 사실 그간 무엇 하나 손에 쥘만한 성과가 없다. 굳이 따지자면 ‘오세훈 후보 재발견’ 정도다.

그렇다면 오 후보를 당의 변화와 재건의 ‘상징’으로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서울시장 보선 후보로만 생각할게 아니라는 뜻이다. 이를 위해 오 후보 본인은 물론 당 차원의 ‘전략적 접근’이 매우 중요하다. 말은 절제돼야 하고 행동은 신중해야 한다. 정책은 구체적이어야 하고 생각은 깊어야 한다. 그래야 그 속에서 미래와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법이다. 오 후보와 국민의힘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사람은 쉬 변하지 않는다는 걸 요즘 새삼 느끼게 되는 따뜻한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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