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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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볼로지(garbology)는 본래 garbage(쓰레기)에 학문을 뜻하는 logy를 붙여서 만든 조어로 ‘쓰레기학’이라고 불린다. 대개 쓰레기 연구를 통해 그 지역의 사람들에 관한 사회학적 분석을 시도하는 학문이다. 쓰레기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학자들만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많아졌다. 쓰레기 속에서 고물을 찾는 사람들인데 그 고물이 보물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물이 보물이 되는 상황은 먼 미래에도 여전할 수 있음을 화제의 영화 ‘승리호’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처음에 승리호를 대하면, 전투함대를 떠올릴 수 있는데, 이 영화는 그 선입감을 뒤집어 버린다. 어쩌면 이런 생각은 우주공간을 다룬 영화들의 일정한 관습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제다이와 우주 제국군이 벌이는 전투 장면들은 승리호의 영웅적 이미지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science fiction) 영화와 드라마는 대개 미지의 신세계를 탐험하고 괴생명체와 조우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스타트렉’이나 ‘에일리언’ 시리즈는 영화 ‘스타십트루퍼스’ 유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외계인을 통해 우리 자신들의 문제를 투영하기도 했던 외계인 지구침공 소재는 영화 ‘트랜스포머’ 시리즈에서 정점을 이뤘다. 환경 파괴로 멸망에 처한 외계인들이 아름다운 지구를 새로운 주거지로 공략한다는 설정은 한때 유행했지만, 더 지속할 수 없었다. 지구도 환경 파괴와 오염이 심각해 다른 외계 행성의 이주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마션’은 화성의 토양으로 농작물을 재배하는 장면으로 이러한 메시지를 말한다.

하지만 거꾸로 화성은 멀기만 하니 또 다른 맷 데이먼 주연 영화 ‘엘리시움’처럼 우주 정거장을 활용해 새로운 주거 공간을 생각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영화는 20세기의 계급 투쟁 문제를 더 중요하게 투영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영화 ‘승리호’는 계급 문제를 배경으로 삼고, 핵심적으로 환경 문제를 설정했던 것이다. 승리호의 크루들은 스타트렉처럼 정규 군대이거나 스타워즈처럼 제다이 기사들도 아니다. 승리호는 전투함선이 아니라 쓰레기해결호라고 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전투는 값나가는 고물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다른 경쟁자들과 다투는 데 있다. 그 경쟁에서 멋지게 1등하는 승리호는 쓰레기가 현재에도 그렇지만 미래 우주 시대에도 심각한 문제라는 점을 은유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도 우주 공간에는 매우 많은 쓰레기가 떠돌고 있는데 일론 머스크 등이 주도하는 본격적인 우주여행이 시도되는 마당에 그 심각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집이라고 해도 화장실 변기가 넘치면 집 전체가 훼손된다. 아무리 멋진 도시도 쓰레기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다면 금방 무법천지가 된다. 이는 깨진 유리창 효과(Broken Windows Theory)를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쓰레기처리는 단순히 대의명분에 호소할 수만은 없다. 생계를 위해 모두 오늘 하루도 바쁘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거나 그것을 잘 활용하는 것이 생계에 도움이 되고 건강하며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거나 이 같은 사실을 충분히 공유해야 한다.

지금까지 가볼로지(garbology)는 주로 과거의 생활을 연구에 집중했고, 고물이 보물 되는 대상은 주로 복고 물품에 집중됐다. 미래 가볼로지(garbology)는 쓰레기에서 각자 인센티브를 어떻게 얻을 수 있을지, 그 구체적인 동기부여 방안을 연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는 이전의 대의명분이나 명예 달성이라는 추상적 심리 요인을 넘어 경제적 실용적 목적 충족을 내포해야 할 것이다. 영화와 현실은 다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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