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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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우드워드의 책 ‘격노(Rage)’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김정은과 관련된 부분이 독자들을 자극하고 있다. 김정은은 그동안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세 번 만났는데, 편지는 27회나 올렸다는 사실이 밥 우드워드를 통해 공개됐다. 왜 그랬을까? 일단 믿기지 않는 일이 현실로 밝혀지고 있다. 가장 큰 관심은 장성택을 처형한 후 시신을 당 최고위 간부들 앞에 전시하고 머리까지 잘라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진짜 그랬을까? 또 김정은의 말이 진짜일까. 한때는 고사기관총으로 쏘아 처형했다고 하는데 고사총은 구경이 14.5㎜로 사람의 시신이 살점으로 흩어지는 최고 중무기이다. 많은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문제이지만 워낙 워커게이트 사건을 취재하고 퓰리처상을 수상한 노련한 기자의 책이어서 아니라고 부인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또 하나 중요한 대목이 있다. 김정은이 우리 한국군을 우습게 보는 허풍을 떨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김정은의 편지 일부분을 직접 공개한다. “중요한 문제를 논의할 양국 실무협상을 앞두고 도발적인 합동군사훈련이 취소 또는 연기될 것으로 믿었습니다. 한반도 남쪽에서 진행되는 합동군사훈련이 누구를 상대로 하는 건지요? 누구를 저지하려는 거며 누구를 패배시키고 공격하려는 겁니까? 이론적으로 전쟁준비 훈련의 목표는 우리 군대입니다. 우리가 오해하는 게 아닙니다. 남한의 국방장관이라는 사람이 이런 생각을 뒷받침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우리의 재래식 무기 현대화가 도발과 위협이 되고 있다면서 도발과 위협이 계속되면 우리를 적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남한 군대는 우리의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언젠가 말했듯이 우리는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남한 군대는 우리 군대의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미군이 이 병적이고 대단히 민감한 행동을 남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모욕당했다는 이 기분을 당신에게 감추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 기분이 나쁩니다.” 우드워드 기자는 CIA가 김정은의 편지를 누가 작성했는지를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편지가 정말 걸작이었다고 평한다. 떠벌리기 좋아하고 역사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트럼프를 상대로 아부와 설득을 절묘하게 섞어놓은 글이라는 점에 대해 분석가들이 경탄하고 있다면서.

그렇지만 이 편지를 두고 ‘멋진 편지’ ‘긍정적인 내용’이라고 자랑한 트럼프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김정은의 편지가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을 완전히 깔아뭉개고 있는데도 자기를 향해 갖은 아부를 한 것만이 그렇게 좋았을까. 하긴 트럼프는 우드워드 기자에게 김정은이 장성택의 시신을 당 간부들이 오가는 건물 중앙 계단 위에 전시했다고 밝혔다. 머리를 잘라 가슴 위에 올려놓은 채로 말이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김정은이 ‘대단히 영리하다’고 칭찬만 했다. 세계 최강국이자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를 자처하는 미국 대통령인데 인권에 대한 존중이나 독재자에 대한 혐오는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나아가 동맹국인 한국에 대한 존중도 눈을 씻고 찾으려야 찾기가 힘든 것도 마찬가지다.

사족이지만, 또 이 책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2017년 B-1B 전폭기가 북한 영공 바로 앞까지 비행했다는 점을 북한이 즉각적으로 알아채지 못하고 보도가 나온 뒤에야 허둥지둥했었다는 일화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은 알고나 있었을까. 그런데도 김정은은 남한 군대가 자기 군대의 적수가 안 된다고 떠벌리고 있다. 핵무기만 믿고 너무 기고만장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까놓고 말해 북한의 핵무기만 아니면 남북한의 밀리터리 밸런스는 이미 1980년대에 무너졌다. 북한의 재래식 전력은 아마도 캄보디아나 미얀마 군대를 합친 정도라고 비교적 높이 평가해 줄까? 김정은 국무위원장 역시 기존의 독재자들처럼 아래로부터 기만당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는 자신들의 군대가 단숨에 한국을 공격하면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제발 정신 차리기 바란다. 오히려 아시아 최강의 한국군은 북한 지역을 단숨에 점령하고 관리할 장갑 및 포병무력, 특수부대 전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제발 공부 좀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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