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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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10일 0시부터 3시까지의 세 시간은 역사에 기록될만한 날이요 시간이다. 이 시간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주석단에 올랐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먼저 눈물로 인민들의 감성을 잔뜩 자극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손수건은 이미 준비돼 있었다. 이와 같은 장면은 지난 75년 북한 최고지도자의 행적을 추적해 보아도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마무리되고 곧 세 차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앞서 눈물을 훔쳤던 연설과 달리 군부대가 행진을 시작하자 돌변했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신형 전략무기들이 대거 공개되자 김정은 위원장의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둥 희색이 만연했다.

북한 주민 앞에서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였던 김 위원장은 고개를 높이 들어 의기양양해졌다. 기존보다 크기가 훨씬 커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잠수함 발사탄도미사일(SLBM), 지난해 집중적으로 시험 발사했던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대구경 방사포가 등장할 때였다. 열병식 장내 아나운서는 ICBM을 이끈 부대가 등장하자 “열병식의 최절정”이라고 흥분된 목소리로 소개했다. 이어 “조선의 힘을 보여주는 시간”이라며 자부심도 드러냈다. 이날의 초점은 열병식 마지막 순서로 등장한 신형 ICBM에 쏠렸다. 이날 처음 공개된 미사일로, 기존 화성-15형(사거리 1만 3000㎞, 탄두 중량 1t)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북한은 열병식에서 신형 ICBM의 구체적인 능력은 드러내지 않았다. “김정식 상장이 지금 거대한 전략 무력을 이끌고 김일성 광장을 통과해 나갑니다”라고 설명했을 뿐, 명칭이나 세세한 설명은 아꼈다. 김정식 상장은 김낙겸 전 전략군사령관의 후임자다. 북한 말대로 ‘거대한’ 무기의 등장이었다. 신형 ICBM은 기존 화성-15형과 비교해 길이는 21m에서 24m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직경도 다소 늘어 2m 수준으로 평가된다. 미사일과 함께 처음 등장한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TEL) 차량도 커졌다. 기존 9축(18개) 바퀴는 11축(22개)으로 늘었다.

미사일 엔진이 커져 탑재할 수 있는 탄두 중량도 무거워졌을 것으로 분석된다. 미사일 크기를 늘린 목적은 여기에 있다. 전문가들은 신형 ICBM 무게를 기존 화성-15형(60t)에서 두 배 가까이 늘어난 100t 전후로 추정하고 있다. 신형 ICBM은 탄두 무게를 늘려 탄두 내부에 ‘다탄두 미사일(MIRV)’ 탑재를 시도했다는 추정이 나온다. 탄두를 여러 개 탑재하면 동시에 다양한 목표를 개별적으로 공격하게 된다. 이를 막아내는 요격 미사일이 격추에 성공할 확률은 크게 떨어진다. 물론 이번에 공개된 신형 ICBM이 다탄두 미사일이라는 보장은 없다. 이번 열병식을 계기로 의문만 커진 상태다. 북한이 탄두 내부를 공개한 사례는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다탄두 전략무기인 둥펑 41을 북한이 그렇게 빨리 베끼는 일은 쉽지 않다. 중국이 그런 첨단기술을 북한에 줄 리도 만무하지 않는가. 북한이 거대한 미사일을 TEL에 싣고 다니는 이유는 간단하다. 고정된 지상 시설에 보관할 경우 선제공격을 받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촘촘한 감시망을 피해 도망을 다니다 기습공격 하겠다는 계산된 전략이다. 물론 차량에 탑재했지만 한계도 여전하다. 열병식을 앞두고 일각에서 우려했던 고체 연료 방식은 아직 적용 못 한 것으로 보인다. 고체연료는 액체연료보다 발사 준비시간이 짧아 사전 징후 포착이 더 어렵다. 신형 ICBM은 기본적으로 바로 앞 차례에 등장한 화성-15형과 유사하다. 핵심적인 기술은 화성-15형 시험 발사로 이미 입증됐다. 그런 점에서 화성-15형이 갖는 의미가 중요하다. 이날 열병식에서 아나운서는 화성-15형이 등장할 때 “세계 최강 절대병기, 우리의 대륙간탄도로케트 종대”라며 한 컷 치켜세우기도 했다. 화성-15형은 이미 3년 전에 완성됐다. 핵무기는 폭발 시험에 성공하더라도 이를 멀리 날려 보내는 미사일 기술까지 완성해야 전략무기로 쓰일 수 있다. 화성-15형의 최대 사거리는 1만 3000㎞ 수준으로, 미 본토 전역이 사정권이다. 아마도 북한은 먼저 대내외에 과시하는 것으로 전략무기 ‘광고’부터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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