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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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서해상에서 일어난 끔찍한 살인행위에 대한 우리 국민들과 세계 인권단체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이에 북한이 취한 반성과 성찰의 태도란 무엇인가? 통일전선부의 입을 이용한 김정은의 ‘간접사과’가 전부이다. 문제는 그 사과란 것이 진심보다는 일단 다급한 상황을 덮고 보자는 급한 불끄기로 보인다. 더욱 가관인 것은 북한 당국은 조선중앙통신이나 노동신문을 통해 이와 같은 사실을 단 한 자도 보도하지 않고 있어 역시 ‘대외용 멘트’란 것을 알 수 있다. 참으로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 안타까운 살인사건의 발단에서부터 이른바 김정은의 사과까지 전 과정을 한번 스크린해 볼 필요가 있다.

서해에서 실종된 공무원 A(47)씨를 사살한 북한의 명령은 누가 내렸을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사과를 표명하면서 김 위원장에겐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정보 당국은 판단하지만, 북한군 최고 수뇌부가 깊숙이 관여했을 것으로 우리 정부는 보고 있는 것 같다. 박정천 총참모장과 림광일 정찰총국장이 이번 사건을 보고 받거나 사살 지시를 내렸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이들은 북한의 디시젼 메이커들이 아니다. 박정천 차수는 북한군의 대표적 예스맨이다. 림광일 정찰총국장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그런 중대 결정을 했다면 그야말로 삶은 소대가리가 양천대소할 일이 아닌가.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는 25일 청와대에 보낸 통지문에서 “우리 군인들은 정장의 결심 밑에 해상경계근무 규정이 승인한 행동준칙에 따라 10여 발의 총탄으로 불법 침입자를 향해 사격했다”고 밝혔다.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는 우리 군 당국의 판단을 부인하면서 대위 혹은 소령급인 경비정 지휘관의 자체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는 설명을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현장 경비 부대가 상부의 승인에 따라 사격했다는 것이 군 당국의 판단이다. 군 당국은 다양한 정찰 자산으로 북한군 상부의 지시를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은 적어도 북한 해군 최고책임자인 김명식 해군사령관이 개입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국회 국방위원들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사령관 이상의 윗선이 개입했을 가능성까지 열어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 소식통은 “북한군 지휘계통을 봤을 때 해군사령관이 단독으로 지시를 하지 못한다”며 “북한군 지휘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박정천 총참모장과 림광일 정찰총국장이 모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박 총참모장이 김 위원장에게 알리지 않고 독단적으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총격 지시 과정에서) 코로나19 경계를 소홀히 해선 안 된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과 정부 당국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북한군은 지휘계통상 윗선의 승인 없이 독단적인 결정이 이뤄지기 힘든 구조다. 북한군은 총참모장이 모든 군령권을 행사하도록 돼 있다. 해군사령관이 일선 부대를 지휘·통제하는 게 아니라 총잠모장이 직접 지휘권을 갖는다는 뜻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봉쇄령 상황이라도 북한군이 남측 민간인을 사살했을 때의 정치적 부담을 고려하면 일선 군인은 물론 해군사령관 급이어도 독단적 결정은 힘들다는 얘기다. 또 다른 정부 소식통도 “북한군 체계상 평양의 군 지도부에 보고하지 않고 단독으로 결정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번 사건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25일 오전 청와대에 통지문을 보내 “해상 경계 단속 과정상 실수이며 미안하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신속하게 전한 것은 군의 결정을 수습하려 직접 나섰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이 통지문에서 “우리 지도부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발생했다”고 언급한 것도 김 위원장에게 사전 보고됐을 가능성을 부인한 것으로 읽힌다. 이번 사건을 두고 2008년 7월의 박왕자 씨 사건을 거론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 당시는 우발적 상황이었고 이번 사건은 북한의 의도된 사살과정이다. 우리는 이번 사건의 최고 명령자는 김여정 노동당 1부부장으로 본다. 그는 현재 노동당의 대미 및 대남정책의 컨트롤타워다. 그의 단독 명령 없이 그런 끔찍한 살인극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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