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훤 행복플러스연구소 소장

 

순간순간 떠오르는 걱정들로 우리는 불행한 시간을 보낸다. 꼭 필요한 걱정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인생 선배들은 이야기한다. 마크 트웨인도 말년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나는 나이가 많이 들었고, 많은 근심 걱정 속에서 세월을 보냈다. 그중 대부분은 전혀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었다.”

인간이 이런 수많은 걱정들을 해결하기 위해 투여한 노력은 뿌리가 깊다. 2천년 전 즈음에 그리스 로마 철학자 중에 스토아학파가 있었다. 그들이 걱정을 없애버리기 위해서 추천한 내용이 참고할만하다. 

먼저 걱정을 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하는 것이다.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집중해서 해결해야 하지만,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더 이상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2천년이 지난 후에 미국의 신학자인 라인홀트 니부어는 다음과 같은 기도문으로 내용을 정리했다. 

“주여, 제게 바꿀 수 없는 일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과, 바꿀 수 있는 일들을 바꾸는 용기를 주소서. 그리고 이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가끔 마음이 복잡할 때 떠올리곤 하는 기도문이다. 노력만으로 쉽지 않은 부분이기에 기도문의 형태로 쓴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기도만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을까? ‘걱정시간’을 만들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하루 중 어떤 시간을 정해서 본격적으로 걱정을 하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조금 더 긍정적인 시간인 아침시간으로 정해놓는 것이 좋다. 걱정시간 이외의 시간에 떠오르는 걱정은 노트만 해 놓는다. 신기하게도 노트에 적어놓기만 해도 걱정은 사라진다. 

걱정시간이 아침이라면 걱정시간이라는 것도 잊은 채 그냥 지나가기 일쑤이다. 아침시간은 바쁘기 때문에 그렇다. 기억을 했더라도 무엇을 걱정했었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걱정노트’다. 노트를 보면 신기하게도 이미 필요 없는 걱정이 돼 버린 것을 발견하게 된다. 몇 개 남지 않은 걱정조차도 위에 언급한 것처럼 해결할 수 없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과 적극적인 행동으로 해결이 가능한 일을 구분할 수 있는 냉철함이 생긴다. 

상상 속에서의 걱정은 몸집을 크게 부풀려서 사람에게 위협을 가한다. 당당하게 맞서면 오히려 두려움이 없어진다. 지인이 최근에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는데 다행히 무척 잘되는 편이다. 요즈음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는 곳도 많다는데 시작한지도 얼마 되지 않아 잘 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와중에 풍수지리를 좀 아는 지인으로부터 터가 무척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불안해했다. 최선을 다해서 신중하게 장소를 선택했고 다행히 잘 되니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 것이다. 그 다음은 어쩌면 신의 영역이다. 어디에 살든 어떻게 살든 끝은 있고, 나쁜 일 좋은 일들을 겪으면서 사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게 생각할 때 두려움은 적어진다. 

‘걱정시간.’ 의외로 큰 효과가 있다. 안 해도 되는 걱정으로 아까운 인생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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