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삼성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불법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6.8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삼성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불법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6.8

심의위 이재용 불기소 권고에

각계서 지적 폭포수처럼 쏟아져

심의위 도입 관여한 박준영

“이렇게 써먹는 건 반칙” 비판

여당·민변·진중권 등 “기소해야”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불기소를 권고했지만 파장은 계속되고 있다. 여권과 시민단체에선 심의위의 권고를 무시하고 검찰이 이 부회장을 기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수사심의위가 “이러려고 만든 게 아니다”라는 의견도 제기되면서 제도 보완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사심의위에 기소 여부를 판단받자는 이 부회장의 1차적인 시도는 성공했다. 아직 검찰이 기소 여부를 확실히 정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 상황만으로도 검찰은 적잖은 부담을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검찰이 심의위 권고와 관계없이 이 부회장을 기소해야 한다는 주장은 끊임없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 부회장의 기소를 주장하는 측의 여러 의견을 종합하면 결국 ‘수사심의위가 검찰과 법원의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말로 정리가 가능하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윤모씨의 재심사건을 맡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가 13일 오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소재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관에서 열린 ‘화성연쇄살인 8차사건 재심청구 기자회견’에서 재심청구 내용 등을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1.13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박준영 변호사. ⓒ천지일보 2019.11.13

◆심의위 탄생 관여한 박준영 “이러려고 만든 게 아냐!”

영화 ‘재심’의 실제 주인공으로도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는 강경한 어조로 이 부회장 사건이 수사심의위 도입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검찰개혁위원회의 일원으로서 수사심의위 도입에 관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박 변호사는 “이 부회장 사건이 검찰수사 결과에 대해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사건인가, 외부점검 시스템을 통해 의혹에 대한 명확한 해명이 가능한 사건인가. 그리고 사건 처리 ‘전과정’을 점검하는 것이 가능한 사건인가”라고 반문하며 “기자들, 수사심의위 도입과정에 관여한 검찰개혁위 위원들에게 전화라도 돌려보시길. 기록이 방대하고 이렇게 복잡하고 전문적인 사건을 다루는 걸 전제로 수사심의위원회를 만들었는지를”이라고 꼬집었다.

또 “이런 복잡하고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건을 심의하라고 심의위를 만든 게 아니다”라며 “회의체의 형식과 실질 모두 문제가 있다”고 질타했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하이서울유스호스텔 대강당에서 열린 국민당 창당 발기인대회 사전행사에서 ‘무너진 정의와 공정의 회복’이란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천지일보 2020.2.9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천지일보 2020.2.9

◆진중권 “심의위가 사법부 역할 가로채”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수사심의위가 사법부의 역할을 가로채 버린 것”이라며 “법치의 근간이 무너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수사심의위가 기소 자체를 막으면서 법정에서 유무죄를 다툴 기회마저 뺏는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진 교수는 “결국 ‘개혁’의 정치적 레토릭으로 검찰과 법원을 못 믿을 기관으로 만들어 놓고는, 정체도 불분명한 사람들을 이 일반의지의 화신으로 내세워 사실상 검찰과 사법부의 권한을 행사하게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최고위원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5.11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최고위원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5.11

◆박주민 “대법이 삼성 경영 승계 실체 인정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박주민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심의위 결과를 수긍하기 어렵다면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결정을 예로 들었다.

박 최고위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삼성 경영권 승계 작업이 실재했다고 인정하며 사건을 파기환송한 것을 언급하며 “이는 (법원이) 기소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검찰은 권고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과 경기 동탄지역 학부모들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유치원 3법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2.26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천지일보 2019.12.26

◆박용진 “검찰·증선위 모두 범죄 혐의 있다는 사건을…”

박용진 의원은 지난달 27일 더 직접적인 어조로 “검찰은 명예를 걸고 이 부회장을 기소하라”고 촉구했다.

박 의원은 “수사심의위가 증선위(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와 검찰이 모두 ‘범죄’ 혐의가 있다고 결론 내린 사건에 대해 불기소를 권고하다니 황당할 따름”이라며 “법적 상식에 반하는 결정이자, 국민 감정상 용납되기 어려운 판단”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어 “이 부회장 때문에 수사심의위 제도의 존재 이유가 의심받고 근간이 흔들리게 될 것”이라며 “어느 국민이 이 제도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고 꼬집었다.

박 의원은 지난달 30일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 수사는 증선위의 분식회계 판단과 고발로 시작된 것이고 1년 7개월 동안 방대한 수사가 진행됐는데 수사심의위가 반나절 만에 불기소뿐 아니라 수사도 중단하라는 해괴한 결정을 했다”고도 했다.

박 의원의 말을 종합하면 그는 경제범죄에 더 전문적인 기관인 검찰과 증선위가 모두 범죄 혐의가 있다고 본 사건을 전문지식이 부족한 이들이 짧은 시간 내에 뒤집었다는 점이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심의위 구성원에도 문제제기

특히 박 의원은 심의위 구성원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심의위에는 이미 여러 차례 분식회계가 아니고 범죄가 안 된다는 주장을 해온 모 대학교수가 참여했다고 한다”고 심의위 결론에 대한 의심을 드러냈다.

실제 현안위원으로 심의에 참여한 김병연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에 대해 불법이 아니라는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은정 서울북부지검 부부장검사. (출처: 임은정 검사 페이스북)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 (출처: 임은정 검사 페이스북)

◆임은정 “짧은 질의응답으로 쟁점 파악 불가능”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도 “수사심의위 위원들이 몇 시간 동안 검사와 변호인이 제출한 의견서 읽고, 짧은 질의응답으로 사건과 쟁점 파악이 다 되면, 그 위원들이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의 경지라 하지 않을까”라며 심의위가 다루기엔 이 부회장 사건이 적절치 않았다고 판단했다.

별유천지비인간이란 인간 세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심의위 위원들이 반나절 만에 모든 쟁점을 이해하고 결론을 내렸다면 인간을 뛰어넘는 경지라는 취지로, 사실상 위원들이 쟁점을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란 의미로 해석된다.

◆민변 “영장전담 판사가 사실관계가 소명됐다는데…”

시민단체도 목소리를 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영장전담 판사가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힌 형사 사건에 대해 과연 수사를 중단하고 불기소를 하는 게 타당한지, 그 이유를 전혀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다”고 비판했다.

실제 당시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심사한 원정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춰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어느 정도는 기소를 기정사실화 한 것이다.

결국 수사심의위 제도에 대한 보완책이 없다면 이번 이 부회장 사건과 같은 논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0일 세메스(SEMES) 천안사업장을 찾아 사업장을 살펴보고 있다. (제공: 삼성전자) ⓒ천지일보 2020.6.30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0일 세메스(SEMES) 천안사업장을 찾아 사업장을 살펴보고 있다. (제공: 삼성전자) ⓒ천지일보 2020.6.30

◆변협 “제도 개선 필요”

이에 대한변호사협회는 “수사심의위의 위원 구성과 심의 내용의 중대성·난해함에 비해 심의시간이 너무 적다는 문제제기가 있다”며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다만 “검찰의 기소 독점 폐해를 막기 위해 도입된 수사심의위 활동이 존중돼야 한다”며 “검찰은 수사심의위 결정 내용을 참고해 기소·불기소를 결정하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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