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코로나19 우려 속에서 실시된 4.15총선이 끝난지도 한 달이 됐다. 당초 기대했던 것보다 좋은 성과를 거둔 집권당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드러난 민심에 놀라면서 기쁨에 들뜬 표정을 감추는데 급급했던 지난 한 달이다. 반면, 투표함 뚜껑이 열리기 직전까지만 해도 판세가 엇비슷하리라 믿었던 제1야당 미래통합당에서는 참패의 당혹감으로 우왕좌왕하다가 가까스로 신임 원내대표는 선출했지만 앞으로 당 정비와 민심을 회복하는 일에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여야 없이 얼마간 충격의 시간이 흐른 이제서야 정치권에 대한 격려와 회초리 등 교훈을 새겼을 것이다.  

총선 민심이 정치판을 짓누르는 사이 거대양당에서는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노라’ 다짐하며 21대국회 준비에 여념이 없는 지금이다. 이제 21대국회를 실제적으로 이끌어갈 거대 양당 원내대표가 선출됐으니 남은 것은 원(국회)구성을 빨리 마치고 제대로 된 민의의 국회, 민생정치를 실현해야하는 일만 남았다. 국민이 바라는바 대로 선진정치를 해나가면서 특히 20대국회의 무능상을 답습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게 여야 공통의 과제다. 

20대국회 임기가 이달 말까지지만 국민불신과 실망이 컸던 국회였다. 그동안 여야의 첨예한 갈등과 반목 질시로 인해 타협 정치가 실종된 현실정치가 국민에게 얼마나 불신을 가져다주고 참담하게 만들었던가. 그로 인해 많은 국민들은 ‘국회의 존재가 무엇인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면서 더 이상 ‘구악정치(舊惡政治)’가 이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즉 편법과 불법, 모함 따위가 판치던 예전 정치판의 나쁜 행태를 그대로 따라 하는 폐단정치를 없애기 위해 무능한 정부여당보다 사사건건 태클을 걸었던 통합당을 심판한 것이 지난 4.15총선의 총평이라고 본다. 그렇게 볼 때 우리국민은 정치판에 염증을 내면서도 관심 가지는 이중 구조 속에서 정치를 냉엄하게 관망․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남녀노소나 다 마찬가지인바 특히 사회현상에 대한 돌파구로서 정당을 선택하고 그 정당과 정책을 지지 또는 반대하면서 대리만족감을 갖는다 해도 틀린 건 아니다.

4.15총선 이후 조사된 통계에서 나타난바 있지만 투표의 아니러니(irony)를 볼 수 있다. 그 사례 중 하나가 ‘조국사태’에 따른 젊은 층의 반응이다. 20대 층에서 ‘정부의 조국 전 장관 임명 강행’에 대해 62%가 ‘잘못했다’고 답했으면서도 총선 사후조사에서는 통합당에 대해 비호감이었다. 20대 여성은 80%, 20대 남성은 77%로 불신이 컸으니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20대는 ‘조국사태에 분노하면서도 통합당을 외면’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 전문기관 분석에 따르면, 20대 중에서도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통합당 지지 또는 중도 무당파들이 투표에 대거 불참하면서 일어난 일부 현상이라고 했다. 여러 가지를 판단해보면 그 말도 일리가 있다. 아무리 반(反)집권여당 편이라 하지만 국회 운영과정에서 정책에 대한 대안 없이 반대만을 위한 반대를 일삼고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기득권을 누리려는 제1야당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지는 게 당연할 테고, 그에 마음 쏠리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런 반사적 이익이나 코로나19 등 여러 가지 상황 덕택에 이래저래 정부․여당만 좋아졌던 것이다. 코로나19의 엄중한 시기에 국민은 정부여당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통합당 전 원내대표는 코로나19 로 인한 긴급생계자금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하지만 돈 몇 푼 때문에 선거권을 팔만큼 국민 수준이 엉망은 아닌 것이다. 어려운 시기에 힘을 합치자는 게 민심이었다. 그러한 배경과 내력에서 본다면 여당이 자기들이 정치를 잘 해서 좋은 결과를 얻은 양 의기양양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한 마디로 통합당이 너무 못해서 또, 국정 운영하는 꼴이 못 미더워서 지지하지 않았다는 것인바, 여당 입장에서는 뚝 길 걷다가 꿩알을 주운 격이나 다름없다. 제1야당인 통합당 형제정당(?)이 얻은 의석 103석에 비하면 여당권의 국회의석 180석 확보는 대단한 것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여권에서는 국회에 주어진 권능 중에서 개헌 의결건만 빼고 무슨 의안이든 처리 가능한 무소불위의 국회권력을 장악한 상태다. 그렇지만 여당 지도부가 분명 알아야할 게 있으니 ‘달도 차면 기운다’는 너무나 평범한 진리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친문 일부 초선 당선자는 자신이 똑똑하고 인기 있어서 당선된 줄 착각하고 있다.  

승리에 도취한 여권 정치인들이 자칫 민심에 반하거나 엇길로 나간다면 상황은 얼마든지 반전될 수 있다. 오거돈 부산시장 성추문이 총선 전에 알려졌다면 부산권과 수도권의 박빙지역에서 결과는 뒤집혀질 수도 있었다.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열린우리당 트라우마’를 되새기면서 특히 초선 당선자들에게 행동 조심을 당부하며 기강잡기에 나선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정치라는 것은 원래 생물(生物)인지라 악재가 생기면 그 여파가 어디로 튈지 아무도 무른다. 민주당이 콧노래 부를 때가 아니라 국민들이 콧노래 부르게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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