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맹기 서강대 언론대학원 명예교수

 

민주주의는 공론장이 활성화돼 있다. 공론장(public sphere)은 사적 의견이 숙의(熟議)를 통해 여론으로 형성된다. 숙의 과정은 사적 의견이 숙성된 형태로 누구에게나 공감할 수 있는 공론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그 원리가 국내 언론과 시장뿐 아니라, 자유주의 국가에는 어디에나 속하는 공통의 관행이다.

어느새 우리 사회는 사적 의견이 질식당하면서 공론장이 붕괴되고 있다. 언론이 상업성을 계속함으로써 공론장의 역할을 점점 상실하고 있다. 언론은 공정성을 상실하고 일방적 주장만 강화시킨다. 하버마스는 이를 공론장의 ‘재봉건화’라는 말을 했다. 언론은 선전, 선동 기구가 되는 것이다. 그 사이에 민주주의는 일방통행의 행태를 계속하고, 시장의 기능은 상실하게 된다.

토론이 상실된 사회는 곧 민주주의 위기를 맞게 된다. ‘운동권 민주주의’가 득세하게 된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기본이 되는 절차적 정당성이 상실된 것이다. 지금까지 9번의 헌법 개정이 있었지만,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 절차적 정당성은 계속 유지돼 왔다. 문재인 청와대에 와서 그 과정이 상실됐다.

청와대가 선거에 개입하고, 후보자를 임의로 낙마시키고, 뇌물 사건을 덮고, 예산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키고, 공수처법안이 기획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마 위에 올라왔고, 월성 1호기 원자력 발전소가 갑자기 영구 퇴출을 맞게 된다. 이 모든 사건들이 청와대 개입이 확실시되지만, 언론은 ‘VIP’를 쏙 빼버린다.

운동권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독주가 시작된다. 언론은 선전, 선동으로 문제를 덮고, 또 새로운 것을 꺼내 다룬다. 어느 것 하나 숙의를 할 시간적 요구가 없다. 즉, 사적 동기로 시작한 의견은 공론장과 시장에서 자기검증원리(self-righting principle) 원리를 생략한 것이다. 체계(system)는 해체의 길로 걷고 있다.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의 헌법 정신이 망각되고 있다. 원래 사회체제는 개인행위자의 다원성을 구성한다. 그 상황에서 각자는 물리적 혹은 환경에 접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과 서로 차이를 두고 소통한다. 사회는 ‘과정의 공정성’을 통해 차이를 인정토록 한다. 물론 그 차이가 가치 지향(value orientation)으로 명료하게 하지 않을 때 정치공학이 난무하게 된다.

설령 기술합리성(technical rationality)이 사적 이해 충돌로 혼란이 발생하더라도, 가치 합리성(value rationality)이 이를 잡아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치합리성의 조건으로 ‘시민의 덕’을 제시하고, 행위의 준칙으로 삼았다. 그는 ‘시민의 덕’을 탁월성, 고상함, 올바름으로 규정했다. 탁월성은 개인의 수월성(秀越性)을 이야기했다. 이는 인간관계가 아닌, 콘텐츠 위주로 개인이 무장할 때 일어난다.

여기서 고상함은 신분 집단(status group)에서 얻는다. 업적성이 아닌, 생득적 지위, 혹은 귀속성 지위(ascribed status)에서 주로 훈련을 시킨다. 파슨스에 의하면 이 지위는 “개인주의 서구와는 다른 전통으로써, 전통 중국 집단주의 사회의 가치로 일상화되었다”고 했다. 조선시대의 ‘왕도정치(王道政治)’나 ‘예(禮)’를 닦는 훈련은 가치합리성을 강화시켰다.

고상함은 언론에서 품격이라고 하고, 그게 국가에서는 국격이라고 한다. 그 좋은 고상함의 습성이 습관화될 때, 개인은 올바름의 가치합리성을 얻게 된다. 이를 통해 이성과 합리성 판단의 기초가 정립된다. 이성과 합리성은 체제를 건실하게 이끌어준다. ‘지구촌’의 역할(universal roles)과 관련을 맺게 된다.

운동권 민주주의는 공론장을 붕괴시키고, 체제를 해체시키고 있다.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으니, 경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공론장이 무너지니, 자기검증원리가 작동을 멈춘다. ‘운동권 민주주의’는 공정성의 늪에 빠지게 된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헌법 정신이 화해되고 있다. 경제가 무너지는 소리가 요란스럽다. 시장질서가 잡히지 않는데 패거리 정치만 강화되고 있다.

‘지구촌’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사적 기업을 악으로 여기니, 모든 기업관계도 국가가 앞장서야 한다. 국격 뿐만 아니라 경제적 손실이 부각된다. KBS 박대기 기자에 따르면 “‘소송인 투자자와 국가 간 소송(ISD)’에서 패소를 했다”라고 했다. 대우전자의 후신 대우일렉트로닉스를 이란의 다야니 가문이 인수했으나, 우리은행과 자산관리 공사 등 채권단이 투자금액 578억 원으로 투자금이 부족하다고 계약을 해지했다. 이 소송에서 국제중재판정부, 영국고등법원 등은 다야니의 손을 들어줬다.

국내 기업 모양 외국계 기업에게 일방적 독주가 먹혀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사모펀드 ‘론스타’는 외환은행, 헤지펀드 ‘엘리엇’은 삼성물산 등에서 계속 갈등을 일으킬 전망이다. 체제의 분화를 인정하지 않는 한 이런 일은 계속 일어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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