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시] 수련이 핀다 - 신수현
[마음이 머무는 시] 수련이 핀다 - 신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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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이 핀다

신수현

북한산 삼천사에 위패로 계신 아버지. 음 유월 초아흐레 
제삿날이면 절 마당 작은 연못에 영락없이 수련이 피어 있다 

아들 없이 딸만 넷, 올해도 잔 올리고 절하다 보면 
툭 터지는 울음, 까닭도 모르게 굳게 결린 어깨 가슴에 
멍든 것들 콧물까지 훌쩍이며 한참 들썩이고 나면 
대체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 뚝……, 
아버지 날빛 가득한 손으로 괜찮다 괜찮다 등 쓸어 주신 듯

노랑 리본 팔랑이며 손 잡혀 따라다니던 무릎 위에서 
참새처럼 재재거리던 등에 업혀 잠들던 그때처럼

말갛게 웃어지는 것이다 
진흙 뻘에 발 담그고도 하늘 가득 머금는 것이다

[시평]

돌아가신 아버지는 북한산 삼천사라는 절에 위패로 모셔져 있다. 아버지 제삿날에는 어김없이 피어나는 절 앞뜨락에 있는 작은 연못의 수련(睡蓮). 

수련은 개화초기에 흐리거나 해가 지면 꽃을 오므렸다가, 해가 뜨면 다시 꽃잎을 연다. 그래서 마치 잠을 자듯이 꽃잎을 오므리기 때문에, 잠을 자는 ‘睡’ 연꽃 ‘蓮’이라는 의미에서 수련(睡蓮)이라고 이름하였다. 

딸들이 보러올 때야 비로소 부스스 눈을 뜨듯이, 꽃잎을 열어 딸들을 맞이하시는 아버지와 같은 꽃, 수련이 피는 삼천사 작은 연못. 그래서 아버지 그리움에 자기도 모르게 울음 떠지는 딸들의 등을 도닥거리며, 괜찮다, 괜찮다 등 쓸어 주시는 아버지의 손길 같은 꽃. 

수련의 뿌리는 연못 속 진흙 뻘에 내리고 있지만, 맑고 깨끗한 물살에 씻기듯이 살아가며, 진흙 뻘과는 다른 해맑은 꽃을 피어내는 꽃이다. 오늘도 음 유월 아버지 제삿날에 찾은 딸들을 향해, 수련, 마냥 말갛게 웃음 짓는다. 세상 모든 어지럽게 엉킨 진흙 뻘 같은 세상에 발을 담그고도, 하늘 가득 머금고 해맑게 딸들을 향해, 아버지 오늘도 웃음 지으신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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