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칼럼] 역사 속에 잊혀진 사동궁 발자취를 찾아서(2)
[박관우 칼럼] 역사 속에 잊혀진 사동궁 발자취를 찾아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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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1900년대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동궁(寺洞宮)의 건축물(建築物)들을 1907년(융희 1) 궁내부(宮內府) 제도국(制度局)에서 간행한 “의친왕궁전답비고책(義親王宮田畓備考冊)에 근거하여 공개한다.

*내전

지밀 12칸 행각 42칸 구주방 14칸 신주방 34칸 침방 8칸 유모방 12칸 반칸

서행각 18칸 이상궁방 18칸 한상궁방 18칸 안상궁방 23칸

*외전

사랑 20칸 행각 30칸 방회청 8칸 반칸 행랑 16칸 외행각 12칸 창사루 1백칸

필자는 이러한 많은 건축물중에서 특히 1백칸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였던 창사루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현재 창사루는 그 흔적뿐만 아니라 사진도 전혀 없다는 것인데 그 규모와 관련해 전각 자체가 1백칸이 아니라 그 주변의 행각까지 포함하여 1백칸이었을 가능성을 감안한다고 해도 그 규모가 1백여칸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동궁에 중요한 변수가 발생하였으니, 그것은 1908년(융희 2)에 양관(洋館)이 건립되었다는 사실인데, 이 무렵을 전후하여 행각들이 철거되었다고 하니 이러한 상황에서 창사루도 철거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동궁의 건축물은 1900년(광무 4)대와 1930년대의 모습이 차이가 있다는 것인데, 규모와 관련해 그 영역이 현재 조계사 건너편 공평빌딩을 기준으로 그 주변 일대와 인사동 수도약국 앞에까지 전부 사동궁 범위에 포함되었을 것으로 본다.

필자는 사동궁의 핵심건축물로서 사동궁 양관(寺洞宮 洋館), 사랑채, 의친왕부 사무실(義親王府事務室)을 거론하고자 하며, 그이외에 의친왕비(義親王妃)가 거주하였던 지밀(至密)을 비롯해 수십채의 한옥건물들로 사동궁이 이루어 졌다.

먼저 사동궁 양관(寺洞宮洋館)의 모습을 보면서 1908년(융희 2) 사동궁 양관과 함께 비슷한 구조로 건립되었던 운현궁 양관(雲峴宮洋館)의 모습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데, 같은 양관임에도 불구하고 운현궁 양관은 현재까지도 그 모습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었으나 사동궁 양관은 해방 이후 1947년 사동궁이 매각된 이후 없어졌다는 것인데 어떤 과정을 거쳐서 없어진 것인지 살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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