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맹기 서강대 언론대학원 명예교수

 

사회에서 사적(私的)이란 말이 점점 사라진다.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가깝게 갈수록 그런 형태가 농후하게 나타난다. 물론 헌법 정신과는 전혀 다른 소리다. 경제민주화라는 말도 자유주의, 시장경제 상황에서 쉽게 용납할 수 있는 용어가 아니다. 최근 들어 경제민주화를 넘어, 정부가 점점 큰 목소리를 내고, 사적이라는 말이 점점 기어들어간다. 공론장인 언론이 질식당하고, 시장이 고사상태에 있다. 이젠 자유란 말도 빼고 싶다.

원래 사적(privatus)은 라틴어이다. 독일어는 privat, 영어 private, 프랑스어 prive 등으로 그 라틴어 어원이 각국의 방언으로 다르게 표현된다. 하버마스는 마키아벨리에서 논한 사적 내용을 끌고 왔다. 사적의 뜻은 ‘공적 관직을 갖지 않음’ ‘지배하지 않는다’ 등 의미를 갖는다. 이 대항하는 말로 ‘지체 높은 영주에 속하는(Herrschaftlich)’ ‘푸블리쿠스(publicus)’라는 말이 있다.

서구 전통사회에서 정치는 귀족이나, 왕의 고유권한이었다. 일반인들에게는 정치에 관해 심도 있게 논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근대화의 과정에서 사적 개인도 정치에 개입할 수 있게 됨으로써 절차적 민주화라는 과정이 필요하게 된다.

일반 평민이 공직에 가면 황송한 일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쉽지 않는 검증의 과정을 거친다. 그리스 시민도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그들은 성소에서 제의(祭儀)를 마친 후 자신의 의제와 그 논리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아고라에서 직접 연설로서 자신의 주장을 피력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웅변가가 되도록 탁월함, 고상함 그리고 정직성을 몸에 배이도록 제자들을 교육시켰다. 그게 ‘시민의 덕’으로 알려졌다.

근대에 오면서 정치인은 언론의 혹독한 검증과정을 거친다. 물론 쿠데타로 정권을 잡을 수 있긴 하나, 5.18을 경험한 군인은 감히 그 생각을 할 수가 없게 돼있다. 여기서 공론장에서 숙의(熟議)가 이뤄진다.

물론 사적 개인은 허영, 욕망, 탐욕이 생기게 마련이다. 과시적 성격의 소유자는 정치권력을 쉽게 넘보거나, 시장에서 성공을 바란다. 하버마스는 과시적 공공성 확보를 이야기하면서 “공공성의 담지자였던 봉건권력, 교회, 제후국, 귀족신분은 양극화 과정에서 해체를 허용했다”라고 했다. 그 과정이 민주화로 봐야 한다. 과시적 공공성에서 정당성을 확보하고, 자기 검증원리를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갖고 있는 프라이버시 사생활권을 과감히 버린다. 공론장이 사생활권을 박탈하도록 부추긴다. 공직자는 사생활이 없게 된다. 실제 공공직 종사자에게 명예훼손이 그렇게 잘 보장되지는 않는다. 프라이버시의 종말, 프라이버시의 죽음, 프라이버시의 상실 등이 최근 표현이다.

정치권력뿐 아니라, 사적 개인은 시장에서 자기 검증원리를 확보코자 한다. 그 덕분에 1960~90년까지 국내 기업은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 등 헝그리 정신을 부추겨 압축 성장을 이룩했다. ‘한강의 기적’은 사적 동기를 극대화시킨 결과이다.

최근 6공화국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등 정권이 들어 사회주의 문화가 국내 정치인들에게 덮어 씌워졌다. 문재인 정권 들어 소득주도 성장, 포용성장, 평화경제 등 구호가 80~90년대 미테랑 프랑스 좌파 사회당이 하던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공공부문 확장, 대기업 국유화를 시도했다. 지금 국내는 국민연금으로 연금사회주의를 시도하고 있다. 재정을 확장하고, 60조원 빚까지 내어, 500조원 팽창예산을 쓰고 있다. 법인세도 22%에서 25%까지 올렸고, 지방세 2.5%까지 포함하면 27.5%가 된다. OECD 평균 21.5%를 넘어선다. 소득세도 5억원 이상은 42%까지 올렸고, 지방세까지 하면 46.2%가 됐다. 정부가 일자리까지 늘린다고 선전, 선동을 한다.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는 최근 “시장과 경쟁, 성장이 실종된 J노믹스의 실패”라는 논문에서 “일자리 창출을 놓고 정부와 민간이 경쟁하다 보니, 세금을 내는 ‘40대 제조업 일자리 한자리’와 세금이 들어가는 ‘60대 사회적 일자리’가 등가물로 통계에 잡히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 일자리를 만드는 경쟁에서 민간은 정부에 늘 졌다. 정부가 이길수록 일자리 질은 나빠지고 있다”라고 했다.

정부가 이젠 사적 영역의 시장을 빼앗아 가고 있다. 시장에서 과시적 탐욕을 걸러내는 자기검증원리를 도려낸 것이다. 정치권이 세금을 늘리고, 고용의 이유로 사적 시장에 개입하게 되니, 성장률이 곤두박질쳐 1%대로 떨어지고, 경제 지표가 말이 아니다. 정치권이 경제 주최의 사적 의지를 꺾어 버린 것이다. ‘촛불혁명’ 운운하고, 공론장을 붕괴시키더니, 시장까지 사적 요소를 도려낸다. ‘공론장의 왜곡’과 ‘시장의 복수’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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