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칼럼] 대한제국 비운의 황실문화재 광선문 변천사(2)
[박관우 칼럼] 대한제국 비운의 황실문화재 광선문 변천사(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환구단(圜丘壇)은 1897년(광무 1) 10월에 건립한 것을 시작으로 몇차례의 중수를 거쳐서 1903년에 완성된 면모를 갗추는데 철거될 당시 환구단을 비롯하여 정문, 향대청, 어제실, 황궁우, 동서무, 전사청 등이 있었으나 이 중에서 정문과 황궁우를 제외한 모든 건물은 철거되는 수난을 겪었다.

한편 환구단의 동쪽에 석고단(石鼓壇) 영역이 위치하고 있었는데, 필자도 처음에 석고단 영역을 환구단의 부속 건축물로 생각한 적이 있었으나 조사하는 과정에서 위치는 환구단 영역 내에 있지만 성격상으로 볼 때 환구단과는 별도로 건립된 독립적인 건축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석고단은 고종황제(高宗皇帝) 즉위 40주년을 기념하여 건립한 건축물이었데, 그동안 알려진 것은 석고단 영역에 석고를 안치할 수 있는 전각인 석고각(石鼓閣)이 있었으며, 석고단의 정문 역할을 하는 광선문(光宣門)이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본래의 석고단의 건립계획을 소개하려고 하는데 이는 1902년(광무 6) 6월에 석고전 영역을 건립하는데 있어서 서울에서 군(郡)으로 보내진 통문을 다시 군(郡)에서 면(面)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작성된 것으로서 통문속에 포함되어 있는 석고의식(石鼓儀式)에는 돌북과 석고각의 건립 계획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인용한다.

[ 북은 둥글며, 태극을 상징한다. 두께는 2자로 양의를 상징한다. 평3좌는 삼재를 상징한다. 직경은 2자로 북두칠성을 상징한다. 단을 팔각으로 팔괘를 상징한다. 대는 사각형으로 네 모서리를 사상을 상징한다. 너비는 33자로 삼십삼천을 상징한다. 높이는 28자로 이십팔수를 상징한다. 전각은 2층으로 각 10칸이다. 내삼문은 2층이다. 외삼문은 1층이다. 수직청과 고직청은 모두 22칸이다. 안팎 담장은 200칸이다. 석고의 단묘 터는 환구단 동쪽 옛 홍궁 터에 있고 작년 12월부터 이 일을 시작하였다. ]

이상과 같은 기록을 통하여 본래의 석고단 건립계획은 규모가 컸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나 실제 건립된 것은 그 규모가 본래의 계획에 비하여 축소되었다는 것인데, 한가지 주목할 점은 환구단 영역과 석고단 영역은 서로 담장으로 분리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석고단의 위치가 환구단의 동쪽에 위치하였으나 서로 독자적인 기능을 가진 건축물이었다는 것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관련해 매일신보 1911년 7월 20일자 기사에 의하면 석고 앞에는 중문(中門)이 있었으며, 석고단의 남문(南門)이 있었다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중문이란 내삼문(內三門)을 지칭한 것으로 보이며, 남문은 바로 석고단의 외삼문(外三文)이었던 광선문을 가리킨 것으로 생각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