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광선문(光宣門)은 1902년(광무 6) 1월 당대 최고의 건축가였던 심의석(沈宜錫)의 설계에 의해 석고각(石鼓閣)과 함께 공사가 시작돼 같은 해 11월 29일 준공됐으며, 석고각은 1903년 윤 5월에 준공했다.

여기서 광선문과 함께 석고각을 설계했던 심의석의 생애를 간략히 소개한다.

심의석은 본관(本貫)이 청송(靑松)으로 1854년(철종 5) 8월 3일 서울 남서 명례방에서 출생했는데 그가 직접 공사에 참여한 건축물은 배재학당(培材學堂)을 비롯해 독립문(獨立門), 정동제일교회(貞洞第一敎會), 이화학당 본관(梨花學堂本館) , 상동교회(尙洞敎會), 탑골공원의 팔각정(八角井), 손탁호텔, 석조전(石造殿), 협률사(協律社), 기념비전(紀念碑殿) 등이 있으니 이러한 기술적 경험을 바탕으로 석고단(石鼓壇), 석고각(石鼓閣), 광선문(光宣門) 등을 공사하는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1913년 환구단(圜丘壇)이 철거된 이후 1923년 3월 이후 조선총독부도서관(朝鮮總督府圖書館)의 건립공사가 석고단 영역에서 시작되면서 해체의 위기에 처하게 됐다.

이와 관련해 총독부 도서관이 준공된 이후 광선문이 도서관의 정문으로 변신하는 상황을 겪게 됐으니, 본래 석고단 정문의 역할을 하였던 광선문이 도서관의 정문으로 전락하는 불행이 시작되는 신호탄이었다.

뿐만 아니라 웅장한 위용(威容)을 자랑하였던 석고각 같은 경우도 도서관 건물에 가려져 있어서 사실상 방치되는 상황으로 변했다.

그로부터 4년 후가 되는 1927년 6월 현재 남산초등학교(南山初等學校) 뒤에 위치하였던 동본원사(東本願寺)경성별원(京城別院)의 정문이 됐으며, 도서관에 방치돼 있던 석고각도 결국 1935년 장충단 공원(獎忠壇公園)에 있는 박문사(博文寺)의 종각(鐘閣)으로 전락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와 관련해 석고각에 안치되어 있었던 석고는 석고각이 박문사로 이전하면서 환구단 영역에 있는 황궁우 옆으로 이전했으니 본래의 석고단 영역은 완전히 해체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편 석고단의 정문 역할을 했던 광선문의 뜻에는 빛을 널리 비추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는데 이는 대한제국(大韓帝國)의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원하는 고종황제(高宗皇帝)의 강력한 의지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상징적인 의미가 큰 광선문이 이미 소개한 바와 같이 조선총독부도서관에서 다시 동본원사의 정문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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