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문화칼럼] 대학가의 분노·좌절 외면 말라
[이재준 문화칼럼] 대학가의 분노·좌절 외면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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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정의(正義. justice)’란 ‘바르고 의롭다’는 말이다. 서구에서는 평등(平等) 공정(公正)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이며 헐리웃 영화들이 즐겨 다루는 주제이기도 하다.

KBS 2TV에서도 요즈음 젊은 여검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 ‘저스티스’를 방영 하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도층의 뒷모습들이 공정한가를 묻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데 요즈음 국민들은 여당이 ‘정의’를 제대로 아는가를 질문한다. 아니 솔직히 외면하거나 팽개쳐버렸는지 모르겠다고 개탄한다. 조국 법무장관 후보를 둘러싼 집권여당의 태도는 촛불 민심으로 태어난 정부답지 못하다. 

지금 국민들이 겪는 실망과 좌절 분노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모르쇠로 옹호하면 할수록 국민들의 탄식이 높아가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문재인 정부의 법무장관은 가장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할 자리다. 검찰을 개혁하고 사회개혁을 한다고 칼을 간 이들이다. 현재 후보는 대통령으로부터 특별히 임명 된 인물이다. 그런데 그 상징적인 인물이 지금 각종 비리로 언론의 포화를 받고 있다. 

공정은 커녕 비리와 부정의 화신으로 지목 되고 있다. 자고 나면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과거 대학에서 정의, 공정, 평등을 외쳤던 글들은 모두 위선으로 드러나 더욱 비판을 받는 것 같다. ‘내로남불’이라는 유행어가 요즈음 ‘조로남불’로 바뀌었다.

지금 조국 가족의 불행은 억지로 스펙을 쌓게 하고 능력도 안 되는 딸을 의학대학원에 입학시켜 의사가 되게 하려했던 부모의 욕심이 자초한 것이다. 선량하고 아름답게 자라야 할 딸은 앞으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처지에 있게 됐다.

부산대에서 합격이 취소되면 평생 주홍글씨를 안고 살아야 한다. 부모의 부탁에 끌려 냉철하지 못했던 교수와 간여했던 관련자들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은 ‘읍참마속(泣斬馬謖)’이란 고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무리 총애하는 심목이라 하더라도 도덕적 흠결이나 잘못이 있을 때는 과감하게 목을 벤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것이다. 사람이 좋다는 것 만을 가지고서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 할 수 없다. 

묵적(墨翟.墨子)은 2천 4백년 전 인물로 봉건사회에서 평등을 부르짖은 인물이다. 묵자 집안의 거자인 북돈은 자신의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법을 지키고 평등을 외쳤다. 그는 진나라 법에 의해 용서를 받았음에도 아들을 죽이면서 ‘묵가에는 예외가 없다’라고 외쳤다.

그의 학문은 ‘천하에 이익 되는 것을 북돋우고(利興), 해가 되는 것을 없애는(害除)것’을 정치의 원칙으로 삼는다. 봉건사회에서 백성과 군주의 겸상애(兼相愛)를 주장, 현대 정치체제를 방불하는 평등사회를 주장했다. 묵적이 ‘묵자’라는 칭호를 받은 것은 그의 냉철한 의지,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 정부 인사들은 같은 편의 흠결은 덮어주고 감싸는 것을 정의로 안다. 지금 여당 수뇌부는 조 후보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외면하고 청문회를 빨리 끝내고 임명을 도우려는 것 같다. 대통령에게 과감히 후보 사퇴를 건의하는 이들이 없다.  

대통령도 청문회를 끝낸 다음 과거 다른 장관들처럼 임명을 강행하려는 것 같다.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고려대, 서울대학 학생들의 촛불집회에 토요일 서울 광화문을 덮은 성난 민심을 보고서도 말이다. 촛불민심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얻은 것을 과신하는 것인가. 이는 오만이며 독선으로 추락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불평등이나 공정하지 못한 것은 정의가 아니다. 젊은 세대들이 공분한 것은 바로 조후보의 이중적 태도와 부도덕이다. 지금 한·미·일 외교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으며 민심은 두 동강이 나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호부에 대한 결단을 내리고 민심의 동요를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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