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역사문화 여행⑦] 5호선 광화문역… 청계천, 파리 ‘센 강’과 무엇이 닮았나
[지하철 역사문화 여행⑦] 5호선 광화문역… 청계천, 파리 ‘센 강’과 무엇이 닮았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나라의 주요 교통수단인 지하철. 그 노선을 따라가 보면 곳곳에 역사가 숨어있다. 조선의 궁궐은 경복궁역을 중심으로 주위에 퍼져있고, 한양의 시장 모습은 종로를 거닐며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지하철역은 역사의 교차로가 되고, 깊은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와 관련, 켜켜이 쌓여있는 선조들의 발자취를 지하철 노선별로 떠나볼 수 있도록 역사 여행지를 내·외국인에게 소개해 보고자 한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서울 청계천. 물줄기 주변으로 문화재가 퍼져 있다. ⓒ천지일보 2019.5.20
도심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서울 청계천. 물줄기 주변으로 문화재가 퍼져 있다. ⓒ천지일보DB

본래 명칭 ‘개천’ 물난리 잦아
6.25 이후 판자촌 형성되기도
2000년대 초 현재 모습 복원
도심 중앙 빌딩숲 속 휴식처
광통교·수표교 등 유적 위치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이쯤 하면 프랑스 파리의 ‘센(Seine) 강’과 한번쯤은 견주어 봐도 되지 않을까. 센 강 강둑 주변에 있는 루브르 미술관과 에펠 탑, 콩코드 광장, 모네 거리. 프랑스의 역사를 보여주는 유서 깊은 건축물이 강 주변으로 퍼져있다.

서울 청계천도 그랬다. 센 강에 비하면 작은 규모지만, 광화문을 중심으로 대동맥처럼 서울의 중심으로 흘렀다. 한양의 궁궐인 경복궁과, 보신각, 종묘, 동묘 등 역사는 물길을 따라 곳곳에 퍼져 있었다.

◆재탄생한 청계천길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으로 나가면 만나는 청계천길. 병풍처럼 둘러있는 높은 빌딩 사이로 푸릇함이 솟아났다. 냇가 곳곳에는 푸르른 나무와 꽃 내음으로 향기로웠다.

청계천은 빡빡한 업무에 쉼을 주는 공간이었다. 한낮에 점심을 먹은 샐러리맨들은 청계천길은 산책로가 됐고, 아이들에게는 자연 체험 공간이었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에게도 청계천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유명했다. 이처럼 청계천은 남녀노소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쉬다가는 휴식처가 됐다.

청계천이 지금의 모습을 갖춘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본래 명칭은 개천(開川)이었다. 자연하천 그대로여서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등 물난리가 많았고, 생활오수가 많이 들어와 주기적인 보수가 필요했다. 이에 순조 때부터 고종 때까지 준설공사가 이뤄졌고, 현재 이름은 일제강점기 때 바뀌었다.

한국 전쟁 이후에는 상황이 심각했다. 천변을 따라 판자촌이 세워지면서, 생활하수로 인해 청계천의 오염과 악취가 심각했다. 이후 1967년부터 1976년까지 청계천고가도로를 건설해서 복개공사가 실시됐고, 2000년대 초 청계천 복원이 시작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청계천은 사람들의 삶 그 자체였고 문학작품 속에서도 자주 등장했다.

청계천(淸溪川) 물은 썩고 냄새 피워도/

그, 소리는 맑고 옥(玉)을 굴린다/

우리들의 마음은 흐리고 욕(慾)으로 가득해도/

그, 말은 어질고 착할 뿐이다

`청계(淸溪)'여 흘러라/

목마른 사슴이나/

고달픈 여행자(旅行者)의 발길을 또다시 꾀일 때까지

시인 박재륜의 ‘청계천’ 작품이다. 한때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깃들어 있는 곳. 그러면서도 삶의 희망과 긍정을 갖는 작가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복개 공사로 궁핍했던 과거의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는 도심 속 녹색공간으로 재탄생해 시민들에게 쉼을 주는 장소가 됐다.

청계천 광통교 다리 아래 모습. 광통교는 신덕왕후의 무덤의 병풍석을 가져 와 만들었다. ⓒ천지일보 2019.5.20
청계천 광통교 다리 아래 모습. 광통교는 신덕왕후의 무덤의 병풍석을 가져 와 만들었다. ⓒ천지일보DB

◆청계천 대표 유적

서울 청계천의 대표적인 유적은 광통교, 수표교, 오간수문 등이다. 광통교는 조선시대 광통방에 위치하고 있어 광통교 혹은 광교라고 불렀다. 이는 도성에서 가장 큰 다리였는데, 홍수 때면 곧잘 무너지자 정릉(이성계의 정비 신덕왕후의 무덤)의 병풍석을 가져다가 돌다리로 만들었다. 광통교에서는 한 해의 액운을 없애준다는 다리밟기를 했다.

수표교는 청계천을 가로질러 쌓은 돌다리다. 물의 수위를 측량하던 관측기구인 수표를 세우면서 이름 부르게 됐다. 조선시대 수문(水門)인 오간수문은 물의 양을 조절하던 문이었다. 명종 때 임꺽정의 무리가 도성에 들어와 전옥서를 부수고 도망갈 때, 이문을 통해 달아났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수표교 ⓒ천지일보DB
수표교 ⓒ천지일보DB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정하나 2019-05-22 16:13:38
이명박 청계천 복원사업 할 때, 주변 상인들 강제철거 당하고 피눈물 흘렸다는 일도 기억해주길...